'거짓말에는 세종류가 있다, 그냥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영국 정치인 '벤자민 디즈데일리'가 내뱉은 독설이다.

통계가 여론조사를 기초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사의 신뢰성은 예나 지금이나 늘 의심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방송사들이 18대 총선 출구 여론조사를 발표했다가 창피를 당한것도 그렇다. 각 당의 의석수가 실제보다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출구조사가 틀린것은 이번 뿐만 아니다. 15대 총선에서 출구조사가 시작된 이후 늘 그랬다. 이때문에 방송사에선 이번엔 범위를 넓게 잡았지만 역시 빗나갔다.

일부 후보들은 출구조사에 흥분해 당선인터뷰까지 했다가 막판에 뒤집어지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론조사가 이처럼 틀린것은 민심을 제대로 못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출구조사의 경우 각 선거구별로 표본이 워낙 적다보니 숨어있는 민심까지 쪽집게처럼 집어내기는 힘들다.

하지만 총선내내 여론조사가 시시각각 변한것은 민심도 그만큼 변하기 때문이다. 민심은 늘 변덕이 심하다.

이런점에서 지난 16대 대선때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특정기간의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 한것은 한편의 '희극'이다. 시기만 달랐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아무도 모른다.

여론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많은 정치적인 변수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여론을 무시한 정책을 펼치거나 각 정당이 특정계층이나 지역을 위하거나 피해를 주는 법안을 만든다면 여론은 달라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천행태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의 언행에도 여론은 출렁인다.

여론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정당이나 정치인은 '롱런'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상식과 교훈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역대 선거에서 오만과 독선에 빠진 정당, 권력욕에 눈이 먼 정치인이 늘 심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탄핵 여파로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며 한동안 기세를 올렸다. 탄핵 역풍으로 난파선같았던 한나라당은 당시 박근혜 대표의 읍소에 가까운 지원유세로 간신히 121석을 만들며 당의 명맥을 이었다.

득의만면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역주행 정치'는 보궐선거 전패라는 치욕을 안겨주었으며 당의 간판을 수차례 바꾼끝에 대선에 임했으나 역시 참패를 당했다. 이번 총선에선 더 심했다. 4년만에 의석수가 반토막이 난것이다. 국민을 우습게 본 결과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민심을 못 읽기는 마찬가지다. 역대 대선중 가장 큰 차이로 낙승을 한것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대통령을 만든 실세들이 득세하면서 세도를 부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총선 공천과 '한반도 대운하'의 무리한 추진이다.

이들은 한나라당 공천장만 있으면 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무조건 당선될 것으로 본 모양이다. 새 인물로 물갈이 한다며 '개혁공천'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해 '계파공천'을 일삼았다. 자질과 능력에 못미치는 몇몇 인물들은 실세와 가깝다는 이유로 공천장을 따냈다.

결과는 어떤가. 최대 200석까지 전망했던 한나라당은 턱걸이 과반에 머물렀으며 그나마 공천권을 휘둘렀던 실세들은 모두 나가떨어졌다. 민심을 잘못 본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선 고전했다. 전통적인 텃밭인 영남에선 '박근혜 바람'에 밀리고 충청권에선 자유선진당과 통합민주당에게 맥을 못추었다.

민심은 또 바뀌겠지만 충청권 민심이 다음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한나라당쪽으로 바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수도권규제완화'라는 현실적인 이슈가 민심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권력은 오만과 독선에 흐를수 있다는 것을 선거판은 보여준다. 한나라당은 절묘하게 '안정'과 '견제'의 경계선인 과반에 도달했지만 향후 정치적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다.

한나라당이 수도권 정당으로 전락하거나 제 2의 열린우리당이 되지 않으려면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민심의 역습'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