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준 < 제2사회부장 >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이있다. 지조나 신의를 버리고 시류에 따라 자신에게 이로우면 취하고 이롭지 않으면 버리는 것을 말한다. 다산 정양용이 펴낸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나오는 말이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국민적인 화제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저변엔 이 말의 참뜻이 숨어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실제로 인간 광우병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초·중·고교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그 아이들이 광우병에 대해 얼마나 알지 궁금하다.

하지만 학생들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이 광우병에 대해 정확한 진실을 알기란 힘들수 밖에 없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틀리고 시민단체와 신문·방송도 다른 시각을 갖고 있으며 학계조차 이견을 보이면서 속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광우병 괴담'이 난무하고 광우병의 실체규명은 하지못한 채 국론분열 현상으로 발전하는 듯 하다.

최근에는 정부가 동물성 사료금지 완화조치를 담은 미국 연방관보 내용을 오역(誤譯)한것을 시인해 수입쇠고기 협상과정의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인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쇠고기 수입협상 과정이 석연치 않아 신뢰성이 의심받았던 정부는 이번일로 공신력이 추락하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여당의 일관성 없는 입장변화가 국민여론을 호도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 신속하고 강력히 금수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과 9개월전 얘기다.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아무리 한미FTA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들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를 볼모로 해서 무작정 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과거 이 문제와 관련 일본 고이즈미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에서 SRM이 발견되자 곧바로 금수조치를 내린 것은 그만큼 자국민의 식탁과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물론 한나라당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마치 야당에서 주장하는것 같다. 감탄고토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요즘 정부 입장을 두둔하는 조·중·동 신문들의 예전과 지금의 논조를 보면 더 헷갈린다. 그들은 광우병 파동을 괴담으로 몰아부치고 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 일부 방송의 미국산 수입쇠고기에 대한 문제제기에 정치적 저의가 있다고 보고 있는 등 사안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나 A일보는 2001년 사설에서 "(수입쇠고기문제는)단순히 농정이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보건에 대한 장기적 안전보장의 측면에서 신중하고 완벽하게 대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눈 앞의 난관이나 관료주의적 책임회피 때문에 임기응변이나 호도책으로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그 후환은 자손들에 까지 이어질것"이라고 겁을 주기까지 했다.

B일보는 한술 더 떴다. 2007년 3월23일자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 미-영국인보다 더 취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미국이나 영국인에 비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김용선 한림대 의대교수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감탄고토의 극치다.

기우(紀憂)라는 말이 있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것을 말한다. 사실 광우병보다는 조류독감 피해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적으로 동감한다. 광우병 파동은 어쩌면 기우 일수도 있다.

하지만 왜 국민들이 수입쇠고기를 불신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정부여당이나 일부 언론이 필요에 따라 무책임하게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인 입장을 취한것도 문제다. 그러니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다. 그 대가가 광우병 파문 확산이라는 부메랑으로 날아온 것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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