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323호 황조롱이가 석달간의 아파트 도심생활을 접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지난 3월 초 황조롱이 암·수 한 쌍이 1년 만에 청주시 복대동 백옥자(52·여)씨의 아파트 9층 베란다를 찾아와 2년 연속 둥지를 틀었다.

황조롱이가 도심을 찾은 것도 이례적이지만, 같은 아파트를 2년 연속 찾아왔다는 것이 더 이례적이었다.

다시 만난 기쁨에 백옥자씨 부부는 '황조롱이 일지'를 작성, 석달간의 동거생활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3월 초 1년 만에 다시 찾아와 한달 뒤인 4월 8일부터 이틀 간격으로 하나씩 모두 4개의 알을 낳았다. 다시 한달 뒤인 5월 10일 하루 한 마리씩 부화되어 모두 세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고, 한달 뒤인 6월 12일 새끼 두 마리가 날아가고 13일 마지막 한 마리도 날아갔다.

백씨 부부는 황조롱이의 다양한 울음소리, 알을 낳기 전 심적·신체적 변화, 암수의 교신 형태, 어미와 새끼의 교감 모습, 먹이 등을 세심히 관찰해 두었다.

또 디지털카메라를 새로 장만해 황조롱이 가족이 자신의 집에서 묵었던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그들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TV볼륨을 줄이고 진공청소기 사용을 자제하는 등 배려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자연에서 온 황조롱이를 배타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족'으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 이 바탕에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생명의 소중함이 깔려있다.

황조롱이 가족과의 이별을 앞두고 백씨 부부는 이들이 다음해에도 또 올 것이라는 믿음에 리본을 달아 나름의 '징표'를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리본이 자칫 황조롱이의 자연생태 생활에 방해가 될까 싶어 포기하고 자연의 품으로 떠나보냈다.

황조롱이 가족은 떠났지만, 백씨의 아파트에는 황조롱이가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과 자연의 소중함이 자리하고 있다.

/ mjkim@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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