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 조성례 / 시인
"살만한 세상이여"하는 소리가 언젯적 들어본 소리인지 까마득하다. 무릎을 수술하고 절뚝이는 다리로 보행을 한지 근 일년이 넘는 나는 병원에 가는 일조차 마음속으로 많이 고통스럽고 두렵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기위해서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우선 의자가 편하고 장거리 여행에서 화장실이 있기에 불편한 내게는 최대한의 이용가치가 있는 교통수단이다.

며칠 전에도 역시 병원을 가기위해 기차여행이 끝나는 영등포역에서 나리려니 젊은 여성이 자기 앞에 가는 승객에게 "그 짐 제게 주세요." "고마워요" 하며 짐을 건네주는 여성을 보니 중년을 훨씬 넘은 맹인여성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대개의 맹인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의심이 많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를 맡긴다는 것은 좀체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맹인여성이 서슴없이 건네주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아는 사이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좀 있으려니 여객전무가 황급히 달려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했습니다" 하면서 맹인여성을 부축해서 내려준다.

잠시 후에 호출기로 영등포역에 있는 장애인도우미를 부른다. 기차 밖 아래쪽과 위쪽에서 역무원들이 송수신하면서 불편한 맹인여성을 인계를 한다. 인계받은 역무원은 맹인여성을 부축해서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밖에까지 안내를 한다. 성심으로 돕는 도우미나 맹인여성이나 너무나 자연스럽다. 여러 번에 걸친 행동에서 나오는 안정감이 그들 사이에는 배어있다.

다리를 절뚝이며 차에 오르려면 건강한 젊은이들이 틈새를 타서 먼저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몰지각한 행위에 화도 나곤 하는 내게 그 모습은 아주 충격으로 다가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계단을 이용하려면 죽을 만큼이나 힘들다. 층계에 매달려 있는 장애인 보호시설은 그림의 떡처럼 호출음만 삑삑거리며 한없이 기다려야 내려온다. 시설을 기다리는 나보다 더 힘든 장애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정말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말뿐이지 전무한 나라라고 내심 많이 혀를 찾는데 세상은 역시 음지와 양지가 공존하고 있었다.

도덕이, 인심이 죽어 있다고 모두들 혀를 차는 세상에서 간혹 이리 정겨운 모습을 보면 함께 마음이 따뜻해진다. 작은 아주 작은 배려에도 이리 훈훈해 지는데도 나부터 먼저 사랑의 손길에 인색해 있다. 무언가 내심 손해 보는 듯한 각박한 마음이 너도나도 있기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적다. 인심이 강박하다고, 정부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또 장애인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힘든 세상이라고 정부 탓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본 그 모습은 우리나라도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괴리감이 줄고 서로 사랑할줄 아는 나라구나 많이 흐뭇했었다.

아직은 참 살만한 세상이다. 조성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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