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더불어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맹자(孟子)가 유년시절 홀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이었는데, 놀만한 벗이 없던 맹자는 늘 보던 것을 따라 곡(哭)을 하는 등 장사 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하필이면 시장 근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장사꾼 흉내를 내며서 노는 것이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곳이 아니구나 하여, 이번에는 글방 근처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맹자가 글 쓰는 흉내와 선비의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더랍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이야 말로 아들과 함께 살만한 곳이구나 하고, 마침내 그 곳에 머물러 살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맹자는 유가(儒家)의 뛰어난 학자가 됐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일화는 누구나 아는 바입니다.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그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지만, 각박한 경제 환경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를 하는 것이 아이들의 학군이나, 직장과의 거리 등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은 것을 포기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원주택을 예로 든다면, 모두가 전원생활을 꿈꾸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도시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론 편리함이 도시생활의 병폐임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는 일입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서는 일정부분 도시의 편리함을 포기하되, 그 작은 포기가 더 큰 자유와 건강,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들 하나 딸린 가난한 미망인이었던 맹모(孟母)께서 21세기인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살았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가난하다고, 종잣돈이 없다고 아예 체념하기보다는 알뜰히 모은 적은 금액일지라도, 자금에 맞춰서 법원경매든 일반 부동산이든 작은 내 소유의 집을, 처음에는 조그마한 평수의 다세대 주택에서 소형 아파트로, 그 다음에는 중형, 대형 아파트 순으로 3번이든 10번이든 이사를 하면서 재산을 늘려갔을 것입니다. 물론 학군도 따져보았을 테고….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맹모(孟母)같이 가족에게 보다나은 조건과 환경이 주어진다고 하면 주저없이 이삿짐을 여러번 쌀 수 있는 현모(賢母)요 양처(良妻)를 적잖이 보게 됩니다. 그럴 때 마다 문득 생각이 드는 것은 "옛적의 중국에 맹모(孟母)가 계셨다면, 현대의 한국에는 강남엄마가 있다?" 어이쿠, 너무 지나친 비교였나…?

/ (주)써플라이 엠엔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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