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상

모처럼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려는데, 책상 위의 수북한 서류를 보니, '나라는 사람이 요즘같이 뜨거운 날에도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언제부터 이렇게 바쁘게 살아 왔는지 그 시작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처음 한 단체의 장을 할 때에도, 더 큰 단체의 장이 되었을 때도 주변에서는 '나'라는 사람이 욕심만 앞세우는 것이 아닌가, 잘 해낼 수 있겠는가 불안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봐왔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예술의 길을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길은 전환점에만 있는 것이 아닌, 고개만 돌리면 여기저기에 무한히 널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코스를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는 지금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고, 또 누구는 성공한 인생, 사랑받는 인생을 꿈꾼다. 그리고, 나 같은 예술인은 어떻게 하면 더욱 완성된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예술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바꿔야 할 것은 인생의 코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바뀌면 저절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고, 전환점을 맞이하면 인생의 코스가 바뀌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전환점을 맞이하려는 사람은 곡선 코스에서 핸들을 돌리지 않고 운전하려는 사람과 같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타인의 시기와 질투의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우선 본인부터 진실 된 길을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나의 진실된 삶의 예술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도 미약했다.

남상(濫觴)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넘칠 람(濫)', '잔 상(觴)' 으로 이루어진 이 말은 '술잔 하나 겨우 넘칠 정도의 작은 물줄기'를 뜻한다. 중국 양쯔강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겨우 술잔 하나 넘칠 정도의 작은 물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남상'은 보잘것없는 시작을 의미한다. 성경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구절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어찌 양쯔강에만 '남상'이 적용되랴. 크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작고 보잘것없는 출발에서 비롯되었다.

세계적인 신화를 몰고 온 아이팟(iPOD)신화의 애플도 스티브 잡스가 중고차를 팔아 마련한 1천300달러로 시작한 조그만 회사였다. 우리나라의 삼성그룹도 조그만 상회에서 시작했으며 '눈높이 교육'으로 유명한 대교도 강영중 회장이 과외교사로 시작해서 키운 회사다. 우리가 상상하고 마음속으로 그리는 원대한 꿈과 비전도 작은 물줄기에서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다'라고 하면 누군가 '첫 술밥에 배부르랴'하고 반박한다. 배부르지는 못하지만 절반을 해치우는 듯 한 기세로 시작한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한 단체의 장으로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뜻하는 길을 찾고자 다시 서류를 검토하며 미소를 머금어 본다.

/ 청주연극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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