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신태용 청주지구촌교회 목사

사람이나 조직에 있어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든지. 요즈음 일어나는 전관예우 및 관례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할 지도자가 절실한 것 같다.

견해나 사고의 변화는 대부분 기존 패러다임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발견된다.

바로 이 점이 왜 우리가 변두리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주의 깊게 듣고 평가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것은 전에 우리도 이미 해 봤는데 별로 효과가 없더라고.", "여기서는 그런 식으로 하면 안돼." 또는 "그것은 규정에 어긋나는 방법(행동)이야." 등등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자주 듣는 말들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들만을 보려고 하는 성향이 있으며 또 많은 경우에는 그러기 위해서 정보까지도 조작하곤 한다.

기존 패러다임의 힘은 우리를 장님으로 만들어 새로운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것을 그 자체로 파악하기보다는 기존 패러다임의 유지에 유리하게 재구성하도록 만든 것 같다.

국토해양부 간부들의 공공기관 낙하산인사, 서민들은 돈을 못찾아 발을 동동구르고 있는데 돈많고 힘있는 사람들에겐 영업정지 전에 불법인출을 해줘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저축은행 사건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너무도 단단하게 굳어진 패러다임은 사고의 마비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듣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증세는 한 때의 성공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시대에 오직 한 가지만의 해결책만을 고집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미래를 예견하는 데에 있어 단순히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파악하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다가올 미래는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새 술은 새 부대에게 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에는 아주 장기적인 계획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3년을 넘지 못한다.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들과 접근법들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유연성과 의지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부와 명예의 두 말을 타고자 다들 혈안이 되어있다.

그러나 타고 있던 말이 죽으면 그 말에서 내려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우리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관례들 중 어떤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관례들 중 어떤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전관예우나 관례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그런 사회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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