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뜨락-최규식 건양대 의공학과 교수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말이 있다. 이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우화다.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많은 원숭이를 키웠다. 그런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원숭이는 계속 늘어나면서 살림 형편이 어려워져 할 수 없이 먹이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원숭이들에게 사정을 얘기하며 "너희들의 식사로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씩 줄 생각인데 어떤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아침에 3개로는 배가 고프다"라며 소동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로 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나,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고 농락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매일 편리하다고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조삼모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속담에도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이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웬만한 시골에서 아마도 소가 재산목록 1호였을 것이다. 농번기에 일을 시킬 수도 있고, 또한 소 자체로서도 커다란 재산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귀한 소라도 누가 외상으로 해 준다면 공짜처럼 착각되어 앞일은 생각하지 않고 우선 소를 잡아서 고기를 맛있게 먹고 본다는 것이다. 아마 호기(豪氣)를 부려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현실만족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신용카드제도이다. 일반서민들은 어쩌면 신용카드사들의 교활한 상술에 훨씬 더 어리석게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과 신용카드사와의 게임은 공정하지 않거나 신용카드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용카드라는 것이 등장하고부터 우리들은 물건을 구입하는 새로운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일단 저축부터 하고 사는 것은 나중에 한다'가 아니라 '우선 사기부터 하고 돈은 나중에 벌어서 낸다'는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신용카드라고 불리는 조그만 플라스틱 조각을 한번만 간단히 긁으면 원하는 것을 당장 가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반면 빚을 갚는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는 것이다. 욕구만족을 나중에 채우고자 하는 인내나 절제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음 달 카드대금을 결제할 수 없을 때는 현금 서비스라는 수단으로 카드대금을 충당하게 된다. 그러면 그 다음 달 급여도 신용카드 회사에 저당 잡히는 꼴이 된다.

이런 식이 계속 반복되면 내 돈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는 신용카드회사가 나를 지배해 버린다. 신용카드는 현재의 소비를 위해 미래의 소득을 저당 잡히는 것이다. 이렇듯 그렇게 배짱 좋게 긁은 신용카드의 결과는 멀지 않아 그 사람의 경제사정을 압박하여 오랜 세월동안 전전긍긍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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