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뜨락-이종완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삶은 에피소드로 채워진다. 누구든지 남이 모르는 이야기 한 두 개쯤은 간직하며 산다. 그 이야기를 남에게 말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에피소드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에피소드가 꼭 재미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재미가 없는 이야기도 삶의 에피소드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에게는 바가지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 집 바가지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은 이사를 하면서다. 새 집을 장만하게 되면 그 집에 어울리는 물건들로 구색을 맞추기 마련이다. 돈 되는 물건이 아니면 이삿짐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삿짐을 쌀 때 버림의 기준은 일상의 유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바가지도 혼수품이라는 것 빼고는 생명력을 잃었다. 아내와 나는 바가지를 버릴 때 한참 고민을 했다. 우리 가정의 역사와 함께한 골동품이란 생각이 들어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망설였던 것이다.

우리는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의식이 반영된 결과인지는 몰라도 17년 동안 쓴 바가지에 얽힌 에피소드를 말해주면 바가지 장사 굶어 죽겠다는 답을 듣기 일쑤다. 마케팅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너도 나도 버리고 바꾸는데 익숙해져 있다. 아직 쓸 만한 물건을 버리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만드는 것도 식은 죽 먹기만큼이나 쉽다. 버리고 바꾸는데 어떤 미련이나 눈치도 없는 듯하다. 버림과 바꿈에는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물건은 돈을 주고 사면 그만이다. 유사한 기능성을 지닌 상품들도 수두룩하다. 사람은 돈으로 내 곁에 두고 싶다고 해서 두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싫어 관계를 끊고 헤어진 사람만큼의 인격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나와 이해관계의 끈이 끊어졌다 해서 타인과의 인연을 헌신짝 버리듯 해서는 곤란하다. 버림과 바꿈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는 바가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주방에 있고 다른 하나는 아내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 주방에는 새로 구입한 아이보리 색상의 바가지가 5년 동안 당당하게 버티며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아내의 마음속에 있는 바가지는 21년산이다. 오래 써서인지 여기 저기 상처가 보인다. 아내의 마음속에 있는 바가지의 상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예전에는 아내의 바가지가 밉게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아내의 바가지가 싫지 않고 오히려 고맙다. 아내의 바가지에는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주방의 바가지가 깨지면 끝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마음속의 바가지는 필수품이다. 마음속에 있는 바가지는 신뢰를 먹고 산다. 신뢰가 깨지는 순간 마음속의 바가지도 깨지고 가정의 행복은 멀어진다. 구성원들의 마음속 바가지가 깨지는 순간 조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마음속의 바가지를 애지중지하며 곁에 두고 살 일이다. 우리 집 바가지가 이래저래 고맙게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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