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수박·옥천 포도농가 장마 피해현장 르포

"지금도 수박밭이 질퍽질퍽해요. 지금이라면 올 가을농사도 포기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충청지역에 200㎜가 넘는 집중호우로 정성껏 재배한 포도와 수박 농사를 망쳐버린 옥천, 진천 농민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던 12일 오후 진천군 덕산면 한천천 인근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허식(55)씨는 자신의 수박하우스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았다.
 

 

▲ 연일 퍼부은 장맛비로 진흙밭이 된 진천 덕산 수박하우스.

볼수록 시름만 쌓인다는 허씨의 수박하우스 6동은 여기저기 널려져 썩어가고 있는 수박들이 이곳이 수박밭이었음을 알려줄 뿐 진흙탕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엉망인 상태였다.

7년동안 알차게 수박을 재배했던 이 곳이 진흙탕이 된 것은 지난달 25일. 집중호우에 하우스 뒷편 소하천이 범람하면서 출하를 한달여 남겨놓았던 꿀수박들이 순식간에 진흙범벅으로 변해버렸다.

허씨는 "소하천 바닥에 토사가 많이 쌓이면서 갑자기 불어난 물을 감당하지 못해 하우스로 물이 넘쳤다"며 예년보다 강수량이 많았던 만큼 미리 점검하고 손을 썼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사실 여기 하우스만 쳐다보면 그나마 있던 기운도 다 빠진다"는 허씨는 "침수된 수박밭 뒷정리를 하고 새로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해야 하지만 아직도 땅에 물이 흥건해 올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허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 곳의 침수피해 며칠 뒤 인근에 있는 자신의 다른 수박하우스 8동에도 물이 차 수확량이 절반이하로 줄었다.

"처음 피해를 입은 하우스는 하나도 건질 것이 없었지만 두번째 피해 하우스들은 40%정도 수확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지금까지 7년간 이곳에서 수박을 길렀지만 한번도 물난리를 겪어 본 적이 없다"고 밝힌 허씨는 제때 하상정비를 못한 군에 대한 원망도 잠시 수박도 풍수해 재해보험 작목에 포함시켜야 된다고 지적했다.

옥천지역 포도농가 사정도 마찬가지.

포도하우스가 물에 잠긴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이진우(61)·박연범(59·여)씨 부부는 12일 오후 진흙 범벅이 된 포도하우스를 둘러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20여년간 포도농사를 지어온 이씨는 "흙이 묻은 포도를 누가 사먹겠냐"며 "팔더라도 제 값을 못받고 '열과'가 심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말끝을 흐렸다.

 

 

▲ 집중 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충북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이진우씨 포도농가에서 부인 박연범씨가 열과 현상을 보이는 포도를 들어 보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용수

 


6천600여㎡의 이씨 포도밭이 시뻘건 황토물에 잠긴 것은 폭우가 내린 지난 10일 밤 10시께.

폭우로 금강 수위가 급상승하면서 인근 하천이 역류해 이씨의 포도하우스를 포함해 마을주민 정수병(78)·서동열(58)씨의 포도하우스도 통째로 삼켰다. 이들 부부는 이날 서울 아들네 집에 갔다가 "난리가 났다"는 동네사람의 전화를 받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이씨는 "마을 사람들이 경운기를 끌고 나와 하루종일 씻었지만 포도송이에 진흙과 이끼가 잔뜩 껴 버려야 할 게 부지기수"라며 "물로 씻은 포도는 분이 안나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씨는 이날 동이면사무소를 찾아 피해보상규정 등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변에 자리한 인근 동이면 금암1리 3천900여㎡에서 30여년째 포도농사를 짓는 오한서(58)씨 등 이 마을 10여 농가도 물폭탄을 피하지 못해 수확을 앞둔 포도가 모두 못쓰게 됐다.

하지만 이들 농가가 피해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옥천군 관계자는 "농어업재해대책법과 소방방재청 재난구호 및 재난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상 과수는 100% 고사한 경우가 아니면 농약값 정도만 지원하도록 돼 있다"며 "농가 단위로 피해율이 50%를 넘을 때만 일정규모의 생계지원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최동일·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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