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 바람이 휩쓸고 간 청원군 북이면 농가 르포

"전기는 끊겨 어둡고, 여기저기서 '쾅' 소리가 나는데 전쟁 난 줄 알았어요."

지난 26일 저녁 8시 30분께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이날 오후부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로 하루종일 농작물을 돌보며 피로에 지친 마을 주민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를 준비했다.

저녁상을 치우고 이부자리에 누워 드라마를 보던 이순득(75·여) 할머니. 잠자리에 들기 전 축사에 있는 사슴을 둘러보던 이용주(39)씨.

간헐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긴 했지만 장마도 끝난데다 지나가는 비라 여긴 마을 주민들은 평소와 같은 저녁시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을과 100여m 떨어진 담배 밭에서는 거친 바람소리와 함께 4차선 도로를 비추던 가로등이 꺼졌다.

이용주씨는 "TV를 보면 미국에서 생긴다는 토네이도처럼 회오리 기둥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담배밭을 삼켰다"며 "무서워서 축사 문을 잠그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 충북 청원군 북이면 일원에 지난 26일 밤~27일까지 강한 돌풍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면서 주택파손과 축사붕괴 등 돌풍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27일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이순득(75)할머니가 돌풍에 건조장 지붕이 날아간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김용수

 


담배밭을 순식간에 삼킨 회오리는 마을로 방향을 틀었다.

가까워질수록 바람소리는 더욱 거칠어졌고, 마을 가로등과 집집마다 켜져 있던 불들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이순득 할머니는 "암흑이었다. 전쟁 나는 것처럼 어둠이 깔리고 '슁', '슁' 바람소리만 들려왔다"며 "문을 잠그고 안방에 있었다"고 말했다.

마을로 향한 회오리는 조금 전까지 이용주씨가 돌보던 사슴농장을 덮쳤고 이씨가 자물쇠로 꼭 잠근 울타리는 회오리바람에 모두 날아갔다. 축사 인근에 있던 약통과 농기구들도 강한 바람에 힘없이 날아갔고 인근 밭에 심겨진 옥수수는 모두 쓰러졌다. 이용주씨는 "사슴이 모두 48마리였는데 바람에 울타리가 날아가면서 행방이 묘연해 졌다"고 토로했다.

인삼밭은 쓰러지고 수확을 앞둔 빨간 고추밭에는 멀리서 날아온 지붕과 약통이 나뒹굴었다.

 

 

마을 주변을 돌던 회오리는 이내 옥수리 중앙에 위치한 400년 된 고목으로 이동했다. 20m 높이에 한 사람이 둘레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큰 고목이었지만 회오리바람 앞에서는 초라했다.

순식간에 고목의 가지는 '뚝' 소리를 내며 모두 부러졌고 그 옆에 있던 김원형씨의 집 유리창은 모두 깨지고 무너졌다.

 

▲ 지난 26일 밤 돌풍으로 충북 청원군 북이면 금대1리 마을 입구에 있던 수백 년 된 고목이 부러져 나가 돌풍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김용수

 


김씨는 "조금전까지 저녁을 먹었는데 순식간이었다"며 "너무 놀라서 아직까지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북이면 옥수리를 공포로 몰아넣은 회오리는 20여분 만에 자취를 감췄고, 마을 주민들은 밤새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비슷한 시각 옥수리 건너편에 있던 금대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마을 입구에서 생긴 회오리는 400~500년으로 추정되던 고목들을 잇따라 부러뜨렸고 전기 공급이 끈긴 마을은 암흑을 방불케 했다.

한쪽에서는 지붕이 내려앉고, 담벼락이 허물어지는 등 금대리 주민들도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이순득(75·여) 할머니는 "50년 동안 살면서 이런 바람은 처음봤다"며 "6·25때와 비슷해서 밤새 두려움에 떨었다"고 말했다. / 신국진

skj7621@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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