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우식 '사람&사람' 변호사

박씨는 1976년 딸 다섯을 둔 유부남 정씨를 만나 1남 1녀를 낳았다. 하지만 1984년 정씨의 본처가 아들을 낳자 정씨는 본처에게 돌아갔고, 이후 박씨가 혼자 자녀를 양육했다. 박씨는 2006년 10월 양육비심판청구를 냈고, 1심 재판 과정중 청구취지를 변경해 과거 양육비 전부에 대해 지급을 청구했다.

1·2심은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78년생 아들에게 2년분을, 80년생 딸에게 4년분의 양육비 총 1천800만원을 인정했다. 박씨는 과거 양육비는 발생 즉시 소멸시효가 진행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08스67). 재판부는 "자녀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할 권리는 기본적으로 친족관계를 바탕으로 인정되는 하나의 추상적인 법적 지위이었던 것이 당사자 사이의 협의 또는 양육비의 내용 등을 재량적·형성적으로 정하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전환되며, 구체적 청구권으로 전환될 때 독립한 재산적 권리로서의 성질을 가진다"고 밝혔다.

이에 대구지법은 최근 박씨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정씨를 상대로 낸 양육비심판청구 파기환송심(2011브52)에서 정씨는 자녀들을 홀로 양육한 1984년 9월부터 성년에 이르기까지 양육비의 일정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1천800만원을 지급하도록 한 1심 결정을 변경해 5천5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법률신문 기사 참조)

권리를 소지한 사람이 오랜 기간 행사하지 아니하는 경우 그 태만에 대한 제재, 상대방에 대한 입증곤란의 구제 등의 이유로 우리 민법은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권리가 시효로 소멸하려면 (1)권리가 소멸시효의 목적이 되는 것이어야 하고 (2)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하지 않아야 되며 (3)권리불행사의 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박씨의 양육비 청구권은 금전지급을 내용으로 하는 채권이므로 소멸시효의 목적이 되며, 박씨가 그 양육비를 청구함에 있어 정지조건의 미성취, 기한의 미도래 등 법률상의 제한은 없어 보이고, 다만 박씨의 법률지식의 부족, 개인적인 사정 등 사실상의 장애만이 엿보이는데, 대법원은 사실상의 장애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박씨는 혼자 양육한 1984년 9월부터 정씨에게 양육비 청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양육비 지급의무는 매달 지급돼야 하는 분할채무로서 각 달로부터 10년 내에 청구하지 아니하면 각 시효로 소멸한다. 따라서 박씨가 2006년 10월에 정씨를 상대로 양육비청구를 했으므로 역산해 10년 전인 1996년 10월 이전의 양육비 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한다. 그러므로 1996년 10월부터 아들이 성년이 되는 1998년까지, 딸이 성년이 되는 2000년까지만 양육비를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 원심의 논리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과거의 양육비는 양육자가 자녀를 양육하게 된 경위와 그에 소요된 비용의 액수, 상대방이 부양의무를 인식했는지 여부와 그 시기, 그것이 양육에 소요된 통상의 생활비인지 아니면 이례적이고 불가피하게 소요된 다액의 특별한 비용(치료비 등)인지 여부는 물론이고, 나아가 당사자들의 재산상황이나 경제적 능력 또는 부담의 형평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분담의 범위를 정해지므로 당사자의 합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야 비로소 다툼없이 구체적으로 행사가 가능하게 되는 점에 주목했다.

즉 당사자의 합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그 청구권의 내용이 정해질 때를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상담한 사건 중에 미혼모가 힘겹게 아이들을 키우다가 도저히 혼자서는 힘들어서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경우가 몇몇 있었다. 그런데 장래의 양육비는 쉽게 청구할 수 있었지만, 과거의 양육비는 인정되더라도 소멸시효가 문제되어 그 금액이 많지 않아 청구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 대법원 결정으로 인해 과거 양육비 청구 범위가 넓어져 양육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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