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이야기> 최광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리 충북의 대표적인 시인 정지용의 '향수'다.

많이 부끄럽지만 박하사탕처럼 화~하게 풀어지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 시가, 시인 정지용의 '향수' 인지는 이번 옥천의 지용축제를 다녀와서다.

아무튼 지용축제에서 3일간 옹기 만들기 시연을 하였는데, 부족함에도 김영만 군수님의 관심과 옥천문화원 강구현 사무국장의 세심하고 알뜰한 배려로, 기억에 남는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관심과 배려 감사드립니다.

경기도 여주에 내가 자주 들리는 옹기공방이 있다. 40대의 젊은 주인은 100% 수제옹기만 만드는 고집스런 사내다. 어쩌다 자녀를 다섯 두었고, 막내는 이제 태어난 지 6개월 정도의 갓난아이다. 워낙에 가난한 집안이며, 오로지 옹기공방의 수입에만 의존하고 자식을 다섯이나 키우기에, 생활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가 수억을 들여 살림집과 함께 커다란 옹기공방을 사들인 것이다. 다른 수입이라고는 일 푼도 없는 그가, 옹기공방 10년에 집과 공장을 갖게 되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전국 최고의 도자기 산지인 여주 이천 지역의 요즘 도자기 경기는 칼바람 부는 겨울 날씨다. 내가 아는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경기가 바닥임을 호소한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돈보다 예술가적 자존심을 내세우던 기개는 이미 버린지 오래다.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면, 없어도 당장 생활에 지장이 없는 문화생활 쪽에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며, 역시 도자기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듯 살얼음판 현실에서 옹기집은 땅을 사고 집을 샀으니, 설명 필요 없이 돈 버는 옹기다. 시쳇말로 '닥옹'이다.

우리의 호흡 같은 물건 옹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이거 소질이 있어야 하지요?" "우린 재주가 없어서……." 그거 절대 아니다. 옹기는 눈 딱 감고 이삼년 속된말로 미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옹기는 여우가 하는 일이 아니고 곰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 배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질흙을 파다가 이기고 치대어 흙을 만드는 일, 잿물 치는 일, 땔감 준비하고, 며칠씩 불 때는 일, 지게나 달구지로 옮기는 일, 허드렛일 3년은 지나야 옹기 만드는 일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흙은 흙공장에서 포장되어 쏟아져 나오고, 값 비싸고 불 때기 어려운 장작가마가 아니더라도, 가스가마나 전기가마로 쉽게 옹기를 구워낸다. 또 교통 좋고 장비 좋아 운반에 어려움이 없다. 배우는 사람이 흔치않으니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재작년 울산세계옹기엑스포에 전국 옹기장이들이 다 모였다. 나 같은 얼뜨기 옹기장이도 마흔네명중 끼인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 전체 손옹기를 만드는 사람은 마흔 명 내외인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나이 들어 작업을 손 놓은 사람, 옹기 기법을 이용하되 작품 쪽으로 비켜선 사람, 등을 제하고 나면 순수 전통옹기장이는 서른 명 내외로 줄어든다. 앞으로 그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희소가치란 말을 이런 때 써야 한다.

옛날 옹기장이는 대접받지 못하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술의 한 장르로서, 대학에서 가르치고 예술가로서 사회적으로도 대접받는다. 웰빙 환경에 힘입어 수제옹기를 찾는 마니아들도 점점 늘어난다.

그러함에도 옹기장인들은 하나 둘 줄어만 가니 10년쯤 뒤에는 아마도 희소가치의 진가가 나타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직장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데, '돈 버는 옹기'의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벌떼처럼 달려들지 않을까. 거기에다 명예라는 덤 까지도 얻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인 셈이다. / 웃는옹기 공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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