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속 '담쟁이' 등 5편 … 삶의 여백·철학 담아

청주출신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을 권고해 파문이 일자 돌연 철회한 가운데 도종환 시인의 시(詩)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잘 알려진 도종환 시인은 충북대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지난 4·11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한국교육평가원은 도 시인이 정치인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시를 중학교 교과서에서 뺄 것을 권고했지만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돌연 입장을 철회했다.

이번 삭제 권고를 받았던 작품은 '흔들리며 피는 꽃', '담쟁이', '종례시간', '여백', '수제비' 등 시 5편과 산문 2편 등 총 7편으로 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본다. / 편집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다가는 제자리로 돌아와 한 송이 꽃을 피우듯 우리는 그렇게 흔들리면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써가고 있다.

때론 지독한 외로움과 좌절, 소외감과 방황, 눈물과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또 흔들리면서 눈물로 젖은 인생을 살면서 영롱한 꽃을 피워가고 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통해 약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풀어냈다.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흔들리며 피는 꽃' 시에 대해 "시인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한 독백체 작품"이라며 "도종환 시인은 시적 대상을 섬세하면서도 작고 약한 것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 역시 세파에 흔들리고 감정에 흔들리며 사는 갈대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살면서 수많은 벽과 마주한다. 하지만 그 벽을 원망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의 잎을 찾아가 손을 잡고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 벽을 넘기까지 비록 시간은 걸리더라도, 혼자 살 길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함께 손잡고 이 어려운 벽을 헤쳐나가자는 마음을 '담쟁이' 시에 담았다.

시인은 고단한 세상에서 담쟁이처럼 살고 싶다고 외친다. 시 '담쟁이'에 대해 김영범 시인은 "곧추선 벽, 물 한 방울 없는 수직의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보면 삶의 강인한 정신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도종환 시인은 1977년 청산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하지만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해직되고 투옥됐으며, 1998년 해직 10년만에 덕산중학교로 복직해 아이들을 가르치다 건강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보은군 내북면에서 쉬기도 했다. '종례시간' 시는 당시 교사로서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교사와 학생들간의 소통의 정을 편안한 시어로 풀어냈다.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갖고 있는 종례시간이라는 심상을 꺼내 어릴 적 추억을 흔들어 깨운다.

'여백' 시에는 여백있는 삶, 천천히 사는 삶을 추구한 도종환 시인의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충북작가회의 편집위원 이종수 시인은 "실제로 그의 삶은 시대적 일과 개인적 일로 여백이 없었지만 여백있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삶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는 작품"이라며 "나무처럼 넉넉하고 편안하고 조금씩 쉼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나 고통을 등에 업고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 같은 시인의 시선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도종환 시인은 아버지의 군납사업 실패로 부모와 떨어져 친적집에서 자랐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어머니와 같이 살기 위해 고등학교를 원주로 정하고 멸치장사를 하시는 어머니, 동생과 힘든 생계를 이어나갔다. 시 '수제비'에는 그 때의 외로움과 가난함이 깊숙이 박혀있다. / 김미정



#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여백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 수제비

둔내장으로 멸치를 팔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류나무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끝 까무룩 잠들고
1군 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길 거슬러 달려가고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 끊기고
이름지을 수 없는 까마득함들을
뚝뚝 떼어 넣으며 수제비를 끓였다.
어둠이 하늘 끝자락 길게 끌어
허기처럼 몸을 덮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국물이 말갛게 우러나던 우리들의 기다림
함지막 가득 반짝이는 어둠을 이고
쓰러질 듯 문 들어설 어머니 마른 멸치 냄새가
부엌바닥 눅눅히 고이곤 하였다.



# 종례시간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흔들어 주며 가거라
쉴곳 만들어주는 나무들
한번씩 안아 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 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 해주다 가거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도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가 좋아하는 짐승도 그려 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게 그러듯
과꽃 분꽃에 입맞추다 가거라


애들아 곧장 집으로 가 방안에 갇혀 있지 말고
잘 자란 볏잎 머리칼도 쓰다듬다 가고
송사리 피라미 너희 발 간질이거든
너희도 개울물 허리에 간지럼 먹이다 가거라
잠자리처럼 양팔 날개하여
고추밭에서 노을지는 하늘 쪽으로
날아가다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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