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최우식 '사람&사람'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이혼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으로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있다. 후자는 어떠한 사유로 부부가 공동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책임이 어느 한쪽에 있다 하더라도 이와 관계없이 이혼을 인정하는 것이고, 전자는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에 이혼의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다른 한쪽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입법주의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유책주의에서는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지만, 파탄주의에서는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우리 민법에서는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나 악의적 유기' 등 구체적인 이혼원인을 규정하고 있는데(840조 1~5호), 이는 유책주의에 해당한다.

한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추상적인 이혼사유도 두고 있는데(840조 6호), 이는 파탄주의에 근거한다.

대법원에서는 원칙적으로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하는 것을 배척해왔다. 그러나 근래에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배우자에게 파탄의 책임이 있고 상대 배우자도 이혼에 응하지 않지만 더 이상 혼인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혼을 승인한 파탄주의에 가까운 판결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필자는 경험으로도 이혼소송은 좀 더 파탄주의로 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가능한 가정의 해체를 막아 미성년자 자녀의 이익을 보호하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축출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오늘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이 이혼청구를 주도적으로 하는 현실에서는 여성 보호의 의미가 퇴색됐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장황하게 상대방의 잘못을 주장해야 하므로 공개법정에서 상대방의 지난 잘못을 낱낱이 드러내 공격해야 하는 결과 부부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이 생기게 하고, 그에 따라 이혼 후 자녀양육이라는 공동의 의무를 다하기 어렵게 돼 오히려 미성년자 자녀의 보호에 역행하게 되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선진국의 이혼법은 한쪽 배우자에게 유책행위가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 이혼을 인정하되,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배우자나 자녀를 보호하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상대방에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혹조항을 두는 '파탄주의'로 이행하는 추세이다.

무엇보다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면 독립적인 인격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야 할 혼인관계에 따른 배우자로서의 지위와 그에 따른 의무 이행을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돼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부부관계가 이미 파탄돼 회복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이혼을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서로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불신의 감정이 쌓이게 되고 이에 따라 자녀의 양육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뿐 아니라 유책배우자로서는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해도 상대방과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면접교섭하기도 어려워 부모로서의 양육책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유책배우자의 의무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위자료청구로써 책임추궁이 가능함에도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상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혼이 절박한 유책배우자로서는 상대방이 요구하는 대로 많은 액수의 위자료를 지급한 후 협의이혼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 이마저 불가능해 결과적으로 원하지 않는 배우자로서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짐에 굳이 이유가 필요할까 싶다. 누구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에 참작을 하면 되지, 이미 파탄이 난 상태로 구속되어 살라고 법이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怨憎會苦)은 8고(苦) 중에 하나다. 오는 것을 막지 않고, 가는 것을 잡지 않는 것이 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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