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최우식 사람&사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다. '갑'의 위세에 대하여 '을'이 겪는 더럽고 치사한 일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이 말 한마디에 '갑질'에 치를 떨던 '을'들도 입이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수천미터 상공에서 라면을 핑계로 승무원을 닥달하다 폭행한 대기업 임원, 아버지뻘인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내뱉는 본사 영업직원의 정신세계는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있어 온 모두 다 '갑'이 되고자 경쟁하는 '을'의 수치를 당연시하는 '갑을'의 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그런데 억울하면 꼭 '출세'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갑질'을 해대던 대기업 '라면상무'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고, 남양유업은 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하고 대리점업주들과 공정거래 협약을 하게 됐다. '을'이 '출세'를 통해서가 아니라 '분노'를 통해서 바로잡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슈퍼 '갑질'을 한 사건이 있으니,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헌법 제1조 제1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2항). 그러므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위임되는 과정인 '선거'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국정원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원세훈' 원장이 그 부하직원을 시켜 대통령 선거에 '댓글'을 달게 하여 선거에 개입하였고, 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자 부하에게 직권을 남용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불구속 기소했지만 내부 지휘라인에 있었던 국정원 3차장, 심리정보국장 등 간부와 직원 3명에 대해서는 전원 '기소유예'를 했다고 한다. '기소유예'란 죄가 되나 정상을 참작하여 굳이 처벌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 한다. "원장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했지만, 상명하복 관계의 조직특성 등을 감안했다"는 이유다.

말이 안 된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는 공무원으로서는 위법한 상관의 명령에 대해 따를 의무가 없고 오히려 이를 거부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원칙을 여러차례 확인했다. 그런데 상명하복? 어쩔 수 없었다는 거다. 그런 논리라면 조폭 두목의 사주를 받아 범행한 부하 조직원은? 나아가 일제 친일한 사람들도 나름은 그 암흑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한 개인의 절도죄도 아니고 국가의 헌법을 유린한 조직적 중대범죄인데도 용서한다고 한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인가? 국민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검찰이 용서를 한다는 것인가?

반면에 국가기관의 범죄행위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는 기밀누설이란 이름으로 모두 기소했다. 법을 어기든 말든, 입 닥치고 명령에만 따르라는 것이다. '무권유죄, 유권무죄'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분노하라'에서 저자 스테판 에셀은 그렇게 외치고 있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이자 사회운동가인 그가 2010년 그의 나이 92세에 발표한 32쪽 분량의 작은 책에서 젊은이들에게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고,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을 떨쳐버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라고 호소한 그의 외침은 전 세계적으로 분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령 (occupy)운동' 시위와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운동 등을 촉발시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폴란드인, 독일인이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유대인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음엔 폴란드인이 끌려갔다. 독일인은 생각했다. "난 독일인이니까…" 그러나 그마저 끌려갔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우리 사회가 4월 19일과 5월 18일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역사는 말한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것이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자, 그러니 억울하면 '분노'하자!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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