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최우식 사람&사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말에는 힘이 있다. 말만 잘하면 빚도 탕감받고, 때로는 칼보다 강하다. 또 어떤 말을 어느 때에 쓰느냐에 따라서 일의 성패가 달라진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그에 맞는 사례를 인터넷 동영상에서 찾았는데 내용이 이렇다. 거지가 길가에 자리를 깔고 앉아 동냥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거지를 못본 채 하거나 보더라도 그냥 지나칠 뿐,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은 드물다. 거지 옆 골판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I'm blind(장님), please help me" 한 여자가 무심코 지나치려다 위 글을 쳐다보더니 그 골판지에 뭐라 쓰고 가버린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준다. 거지는 신이 났다. 몇 시간 후 그 여자가 왔다. 거지는 직감적으로 그 여자임을 알고 골판지에 뭐라고 썼는지 물어본다. 골판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또 좋은 말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만, 나쁜 말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목숨도 빼앗는다. 그래서 말은 위험하다. 까딱하면 자기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양날의 칼이다.

2009년 한글날 특집으로 MBC에서 '말의 힘'에 관하여 실험을 했다. 두 유리병에 밥을 넣고 하나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붙이고 한 달 동안 긍정적인 말을, 다른 하나는 '짜증나'라는 글을 붙인 다음 같은 기간 부정적인 말을 했다. 한달 후 '고맙습니다'를 붙인 병에는 하얗고 뽀얀 누룩곰팡이가 누룩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짜증나'를 붙인 병에는 시커멓게 썩어버려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변호사는 말과 글로서 먹고 산다. 변호사의 직업적인 말과 글은 설득의 기술이자 공격방어의 무기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해 그에 맞는 논리를 세우고 상대의 허점을 찾아낸 다음 정확한 법률용어로서 정리해 글(준비서면, 변호인의견서)로서 제출하고 말(변론)로서 상대의 논리를 깨부수고 판사를 설득한다. 즉 변호사는 말과 글을 통해 자신의 역량과 가치를 드러내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대개 한 쪽이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소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변호사는 한 쪽의 대리인이다 보니 한 쪽의 이야기만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말을 한다. 한 쪽의 이야기가 진실인 양 믿고 하는 것이다. 어차피 진실의 판정은 판사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잠재적'인 진실인 것이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하고, 그래서 변호사는 사건을 성실히 처리해야 하지만, 자기 쪽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즉,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사건의 객관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세상이 각박해진 탓인지, 극한대립이 일상화된 정치권의 영향인지, 요즘 변호사의 말과 글이 너무 '날'이 서 있음을 본다. 변호사는 상대방의 소장이나 답변서를 받아보고 과연 상대는 어떤 공격과 방어의 방법, 어떤 예리한 주장이 들어 있는지부터 살펴본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논리적 모순과 부당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으면 상대방 변호사의 유능함에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특히 정곡을 찌르는 논리를 보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전율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가끔은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을 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상대방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주장", "터무니없는 주장", "억지 주장", "법의 기본도 모르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그것이다.

필자도 그런 표현에 의해 졸지에 무식한 변호사로 전락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정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어차피 그쪽이나 이쪽이나 확정될 때까지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한 것인데, 변호사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면서까지 꼭 재판에서 이기고 싶은 것인지.

필자는 지번주 이혼사건의 상대방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왜 내 말은 안듣고 일방적으로 여자 입장에서만 썼느냐"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한쪽의 말만 듣고 소장을 쓸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반박은 재판에서 하면 되고, 최종적으로 판사가 판단하는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도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최대한 표현을 자제해서 한다고 한 것인데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말과 글은 내 인격의 표현이다. 법적 주장은 내용은 예리하되, 그 표현은 점잖아야 한다. 온갖 아전인수격 주장이 난무하는 정치판을 욕하지만 과연 우리 변호사 업계는 어떨까를 생각해보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미 변호사업계도 경쟁으로 접어들었다. 법조인으로서 품격과 상호간의 예의로서 역지사지의 금도가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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