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용서와 관용. 참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용서와 관용이 잘못된 관행을 만드는 비겁한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한 경우도 있다. 적어도 선거에서의 용서와 관용이 바로 그러한 듯하다.

항상 선거후에는 승자는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그간 제기되었던 각종 의혹을 묻어버리곤 하는데, 특히 선거의 무게가 큰 경우에는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다. 즉, 얼렁뚱땅 국민통합(?)되어 버리는 까닭에 사건의 진위가 궁금했던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인기 주말드라마가 절정에서 다음 주 예고편만 살짝 보여주고 갑자기 종영되었을 때와 같은 허탈함을 느낄 법도 하다.

선거가 끝나면 선거전에서 폭로를 일삼던 정당의 입들도 '선수끼리 왜이래'하는 쑥스런 미소를 교환하고 더 이상 진위를 밝히길 꺼려하고, 언론도 선거당시에 불거진 각종 사건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

진위를 밝히기 위해 물고 늘어지는 인물은 자칫 정치적 감이 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자로 보여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불안한 국민통합의 유통기한이 오로지 다음 선거철까지만 임을 경험에 비추어 잘 알고 있다.

다툼, 특히 소송은 이기면 덜 다치고 지면 많이 다칠 수 밖에 없는 승자없는 전쟁이다.

따라서, 사적인 권리의무에 대한 다툼이 당사자간 화해와 용서로 종결되면 그보다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법질서위반 여부를 두고 공적인 영역에서 피의자간 옥신각신하던 사건을 서로가 없던 일로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정의하다. 그러므로 선거철마다 폭로된 위법사항은 선거의 승자가 누구가 되었든 반드시 그 수사를 멈추지 말고 끝까지 밝혀내어 책임을 따져야 비로소 법이 객관적 질서로 인식될 것이다.

그리하여, 혐의가 범죄로 밝혀진 것은 그 혐의 내용대로, 무고한 경우는 그 무고한 대로의 죄값을 치러야 앞으로의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국정의 향배를 두고 경쟁하는 직접 당사자들의 개인적 품성이나 도덕성은 그 내부에서부터 철저하게 검증되었을 것이고, 공인으로서 외부에 노출이 많은 만큼 선거과정에서 폭로되는 사건에 정당의 후보자가 직접 관련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몇 해 전 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공격 사건은 한 정당에 소속된 개인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무리한 충정을 보이기 위해 일으킨 사건으로 결론이 났다.

따라서 아마도 선거와 연관되어 폭로되거나 고발된 많은 사건들은 그 정치 지도자 주변의 사람들이 잘못된 충정에 의해 비롯되었거나, 관련자 본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리석은 충정도 쉽게 용서되면 또다시 판세에 올라타서 기회를 엿보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정치적 관용과 용서는 그들의 범죄로부터 이득을 본 정치 지도자들의 범죄 방조행위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적당한 리스크를 무릅쓰고 감행하여 성공하면 보상받고, 실패하면 개인책임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계산 빠른 야심가라면 한번쯤 노려볼만한 일이고, 선거승리에 목마른 조직에서 눈감을 만한 동기부여가 충분히 되지 않겠는가?

일반인의 경우, 그 피용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불법을 행하였을 때 그의 사용자는 민사적으로는 그의 사용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고, 형사적으로는 양벌규정으로 인해 그 사용자도 행위자와 함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심지어는 사용자에게 아무런 과실이 없음에도 그 피용자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사용자가 처벌받도록 하는 법규정마저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사건이 들통났을 때 윗사람은 '아랫놈 잘못이다'라고 넘어가고, 들통나지 않았을 때 강자에게 줄 선 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보상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정치판에서 이전투구는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어쩌면 개인차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일 법도 하다.

아름다운 통합, 용서나 화해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단죄와 통렬한 반성 이후의 일이다.

선거 후 승자의 묻지마 아량이 관성처럼 따라붙는다면 정치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선거 이벤트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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