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법률사무소의 딱딱한 공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발라드 음악 한곡이 조용히 흐른다. 가수 T의 '시간이 흐른 뒤(As time goes by)'.

마지못해 살아가겠지 너 없이도/ 매일 아침 이렇게 일어나/ 밤새 조금씩 더 무뎌져버린 기억 속에서/ 애써 너의 얼굴을 꺼내어 보겠지/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느린 아픔을 주는지/ 힘든 하루 속에도 늘 네 생각뿐인 난/ 눈물마저도 말라가는데/ As Time Goes by 난 그게 두려운걸/ 네 안에서 나의 모든게 없던 일이 될까봐/ 눈감으면 늘 선명하던 네가/ 어느 순간 사라질까봐/ 정말 겁이 나는 걸

시간이 흐르면서 남겨지는 옛 정인과의 추억, 그리움이 고스란히 표현된 이 발라드 곡을 들을 때면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향기로운 커피 한잔을 들고 옛 추억을 더듬고 싶어진다.

타인 분쟁의 검투사로서 딱딱한 삶을 살아가는 변호사들도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가끔 감상에 빠지는데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직업은 이런 촉촉한 감상을 건조한 현실로 변화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직업으로 인해 세월의 흐름이 건축가에게는 건물 준공예정일로, 제조업자에게는 유통기한으로, 기자에게는 원고마감으로 다가오게 될테니 말이다. 당연히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들에게도 시간의 흐름은 낭만적인 추억을 환기시켜주는 매개만이 되지는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중요한 법률사실로써 많은 법률효과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를 추억하고 있을 동안 우리의 권리는 소멸을 향해 치닫는다. 이른바,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말해 주듯이 권리는 일정기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이를 소멸시효라 한다.

일반적으로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 민사채권은 10년, 상행위로 인한 상사채권은 5년, 이자, 급료채권 등은 3년, 의복, 수업료 등의 채권은 1년의 시효기간을 완성하면 시효로 인해 소멸해 버린다. 필자로서는 안타깝게도 변호사의 보수채권은 채권들 중 소멸시효가 비교적 짧은 3년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환수금의 문제도 위와 같은 국가 채권의 소멸시효와 관련되어 있었다. 평소 개인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필자는 내 권리 위해서 내가 잠자는데 권리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영 탐탁치 않았었는데, 이 번 사건을 보며 권리에 유통기간을 설정해 두는 것이 국가의 게으름을 채찍질한다는 면에서 오로지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반면, 시간의 흐름으로 권리를 취득하는 것도 있다.

예컨대,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건물이나 토지같은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하고, 보석류같은 동산은 그보다 짧은 10년 혹은 5년이면 그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대효과로 기존에 소유권을 가졌던 누군가는 소유권을 잃게 될 터이지만 말이다.

시간의 흐름은 기억의 소멸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는 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범죄사건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이를 공소시효 완성이라 한다.

즉, 검사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에 공소를 제기할 수 없어서 결과적으로 범죄자는 그 죄에 따른 형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를 범죄자의 잊혀질 권리쯤으로 이해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범죄마다 공소시효가 다른 까닭은 범죄에 따라 잊혀짐의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송행위 중 항소 제기와 같은 특정한 행위는 반드시 일정한 기한 내에 하여야 한다.

간혹 스스로 소송을 진행하다 1심의 판결송달을 받은 후 오랜 시간 묵혀두다 변호사를 찾아오는 분들이 있는데, 대개는 그 경우 판결은 기일도과로 확정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만약 변호사가 기일산정을 그르치게 되면 큰 곤란을 겪게 되는데 그런 불변기일의 도과를 회피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변호사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윽한 커피향 베인 빛바랜 수채화같은 추억이 된다. 하지만, 그 흐름속에서 권리는 생성ㆍ소멸되어 가며, 범죄는 잊혀져간다. 그런 로망한 추억과 차가운 현실의 변화를 동시에 지켜보는 것이 변호사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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