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 대표변호사

석양이 지는 저녁 터덜터덜 퇴근하는 길.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유리창 넘어 고깃집 불판위 삼겹살이 지글지글 하얀 연기를 내며 익고 있다. 불판 주위를 둘러싼 손님들의 웃음소리에 나도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들 손에는 소주잔이 들려있다. 챵~소리에 이은 캬~

삼겹살에 소주는 누가 만든 조합인지 햅쌀밥에 김장 겉절이, 피자에 콜라만큼이나 잘 어울린다. 평소 술이 약해 소주 반병에도 걸음이 휘청이는 나조차도 삼겹살을 먹을 때 소주가 없으면 어쩐지 허전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회사의 회식, 명절 친척모임에 소주를 비롯한 각종 술을 빼놓는다면 아마도 그 흥은 반감될 것이다. 물론 적절한 양을 마셨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래서 엄격한 도덕론자인 칸트조차 "술은 입을 경쾌하게 하며, 마음을 털어놓게 하며,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라고 술을 찬양했는가 하면, 키케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인간에게서는 사리분별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했다하니 술을 빼놓고는 인간관계의 상당부분을 논하기 어려울 듯도 하다.

그러나 법화경에는 이런 말도 있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만큼 자제하기가 어렵고, 그에 따라 음주자가 피폐해질 수 있음을 경개하는 말이다.

그래서 1920년대 미국에서는 알코올 중독과 음주범죄를 줄이기 위해 금주법을 제정하였는데, 이 때문에 조직폭력단의 주류 밀거래, 무허가 술집, 폭력조직간의 살인사건 등 강력범죄가 발생하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금주법으로 인해 당시 많은 사람들이 메틸알코올로 술을 몰래 만들어 먹다가 사망하는 사건도 속출하여 결국 금주법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지금도 음주와 범죄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경험적으로도 폭력사건에서 음주가 연관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정도이니, 음주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최근 음주후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하여 법원이 음주했다는 이유로 형을 감경하였다는 기사에 대한 수많은 네티즌들의 성토가 있었다. 술까지 먹고 분별없는 행위를 했다면 가중처벌하여야지 어째서 형을 감경하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실제로 형법에서는 음주로 심신상실되거나 미약한 상태하에서 범행한 경우 형을 감면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범행당시 행위자가 사물변별 능력이 없었다면 행위자에게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형사법상의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술먹은 범죄자에 자비를 베푸는 법이 참으로 부당한 것으로 여겨질테고, 범죄를 결심한 자는 자신이 저지를 범죄에 대한 형벌을 감면받기 위해서 미리 음주계획을 세우고자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법은 이런 계획적인 음주범행에 대하여 면죄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 형벌감면 규정 바로 다음 항에 범죄행위 위험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음주한 후 범행한 자들에게는 감경·면제의 해택을 주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형사 법정에서는 술로 인한 폭력사건에서 위의 책임조각이나 감경을 인정하는 사례는 많지 않고, 다만 범죄자의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취지로 주장되어 판사가 범죄자의 여러 사정중 하나로 고려하여 형벌 산정시 참고할 뿐이다.

그러니 음주범죄와 관련하여 피해자가 크게 야속해할 일이나 범죄자가 혜택을 받을 일은 드문 듯하다.

범죄-그것이 크던 작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일정량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연현상인 듯하다.

하여, 나는 술을 사랑하는 일인으로서 술이 있어 범죄가 발생한다기보다 술덕에 금주법 시대의 미국에서와 같은 강력범죄 대신 가벼운 범죄가 일어난 것일 수 있다고 술을 변호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무뚝뚝한 아버지가 슬그머니 자식의 어깨를 만지면서 하신 닭살 돋지만 감동적이었던 애정표현, 연애의 필살기였던 취중진담, 이 모든 감동의 시간에 적당한 술이 함께 했었다.

불별을 잃은 과한 술이 문제이지 술 자체에 무슨 죄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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