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법률사무소 충청 변호사 권택인

누군가가 진실한 사실을 말했을 경우도 죄가 될까. 질문을 달리해 보자. 당신이 어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의료진이 상당히 불친절한데다가 진단이 잘못되어 이중 삼중으로 병원비를 지불하는 일이 생겼을 때, 이와 같은 사실을 마을 소비자 커뮤니티에 알리는 것이 죄가 될까?

정답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허위사실은 물론 진실을 말해도 형사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론은 평범한 일반인의 법감정에 비추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서 키워드로 명예훼손 검색을 하면 위와 같은 사정을 몰라 진실을 적시했다가 고초를 겪는 누리꾼들의 하소연이 넘쳐난다.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지 진실인지 여부는 다만 형의 크기가 다를 뿐 모두 명예훼손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진실을 말하였다는 항변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적절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이에 진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를 하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고, 그 위헌을 다투는 헌법소원이나 그 폐지를 위한 의원입법 발의까지 있었으나, 우리나라는 오히려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새롭게 입법되는 등 규정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필자도 명예는 지켜져야 할 필요는 있으나, 과연 그 수단이 형벌이어야 하느냐는 점에 큰 의문을 가지고 있고, 특히 누군가의 허명에 가까운 명예를 공익에 합치하는 진실을 숨겨서까지 보호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명예훼손에 대한 규정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우리나라의 현재의 입법은 명예훼손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전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즉, 미국에서는 명예훼손행위를 주로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규율하고 있고, 독일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과거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두고는 있었으나, 현재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경범죄로 처리하는 등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까지도 비범죄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명예훼손죄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헌법상 기본권이자 모든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법적 기초로 평가되는 표현의 자유를 축소시킨다. 표현의 자유가 강하게 보장될 때 국민들은 주체적인 목소리로 부폐한 권력에 맞서거나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비판할 자유, 타인이 듣기 싫은 소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하므로 명예훼손죄 처벌을 강화할수록 국민의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또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표현에 대해서도 명예감을 훼손한다는 사유로 처벌하도록 하는 법조항 때문에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정보의 공유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언론이 직접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익적 목적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 또는 위법하거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의견제시, 정치적 풍자나 비평, 패러디, 기사화 논평 또는 사설마저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명예훼손죄에서 보호하는 명예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말한다. 이러한 외부적 명예 보호의 최대 수혜자는 대체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권력자들이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들이 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권력자들이나 부유한 계층은 명예훼손죄 덕택에 형법상 명예뿐만 아니라 일반인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지위를 보장받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명예훼손죄를 공론의 장에서의 일반국민의 활발한 토론과 여론형성을 방해하는데 악용할 우려가 상당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에 있어서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사상은 억제되고 진리는 숨겨지기 마련이므로 결국에는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심지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까지도 형사처벌하는 법규를 폐지하였거나 폐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당장의 조그만 질서를 위해 명예훼손 관련 처벌을 확대하고 강화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바르게 정리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