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 변호사

모 케이블 방송에서 갓 상경한 하숙생들의 낭만을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방영되고 있다. 그 드라마는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90년대 초중반을 혈기왕성한 청년기로 보낸 많은 7080세대들(그 때는 아마 우리들을 X세대라 불렀을 것이다)의 감수성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그 시절, 그 드라마의 무대가 된 곳에서 하숙생활을 한 경험이 있고, 게다가 마치 나의 하숙집 룸메이트가 작가가 되어 필자의 하숙생 시절을 드라마화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필자의 하숙생활과 닮아있는 구체적인 묘사 때문에 그 드라마를 시청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특히 당시 유행했던 모 락카페의 실명이 거론되며 행색이 초라해서 입장이 거절되던 등장인물의 에피소드에 이르러서는 더욱 격하게 공감되어 당시 필자를 강하게 '뺀찌(?)' 놓았던 락카페 문지기 형님의 가명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나의 하숙집에는 드라마 속 고아라 같은 미녀 따님이나 앳된 미모와 달리 걸쭉한 남도 사투리를 쏟아내는 하숙생 대신 그저 평범하고 맘이 너그러웠던 대학원생 누나가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지금 드라마로 돌아보는 1994년은 빛나는 청춘들의 사랑이야기와 고뇌가 버무려진 아름답기만한 드라마 같은 시절이다. 그러나, 필자가 법률가스럽게 사실을 확인하려고 로망한 기억으로 응답한 1994년도의 신문을 들추어보니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이슈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새롭게 떠오른 필자의 기억에도 1994년은 암울했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서 자의반타이반으로 떠나야 했던 해가 아니던가!

1994년도 신문의 헤드라인만 봐도 8ㆍ15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비롯해서 UR비준을 반대하는 농민들 시위에 경찰버스가 불탄 사고, 북핵문제가 생길 때마다 회자되는 '서울 불바다' 발언, 조계사 총무원장 자리를 둔 대규모 폭력사건, 전두환ㆍ노태우 내란음모 재판과 여전히 쿠데타의 불씨로 남아있던 하나회 전격해체 등 어찌보면 일개 청춘의 애정ㆍ방황문제 같은 개인의 이야기는 도저히 기억되지 못할 것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핵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고, 나라는 부패하여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꿈꿀 수조차 없었고, 과거청산에 반발한 군인들에 의해 또다시 군정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진지하게 걱정하던 바로 그 1994년이 지금은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시절로 추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은 기억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2013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창건한 이래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겠냐마는 올해 역시 '다사다난' 했다.

극동3국이 영유권을 놓고 벌인 군사적ㆍ외교적 대치를 비롯하여 각종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고위급 공무원의 적격문제, 청와대 참모가 연관된 성추문, 북한의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로케트 발사로 인한 전쟁분위기 고조, 대선 과정에서 국가기관 개입여부와 사초실종에 대한 여야의 극단적 대치와 그에 대한 국론의 분열, 청문회에서 불거진 경찰ㆍ검찰조직의 내부갈등, 최악의 폭염과 원전비리로 인한 Black-out 직전의 상황, 국가전복시도 혐의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위헌정당해산심판이 청구된 사건 정도만으로도 2013년도에 '다사다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험에 비춰보면 국가적 사건ㆍ사고도 개인의 소소한 역사를 매몰시키지 못하는 듯하다. 큰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청춘은 고민했고 사랑했으며 생활인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그 본분에 충실히 했을 뿐이지만 대한민국은 그런 아름다운 개인사의 힘으로 굳건히 발전하지 않았던가.

그런 까닭에 지금의 2013년은 다사다난하여 고단하지만, 빅뱅의 G-dragon이 보고싶은 과거의 스타로 아침마당에 출연하고, 현아 현승의 트러블메이커가 리메이크되어 잔잔한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깔릴 즈음 기억속의 2013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아름다운 응답을 해줄 것인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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