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의뢰인 A가 찾아왔다. 회식후 직장동료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고소를 했고 경찰,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데, 달리 목격자도 없고 당사자의 주장은 상반되고 해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의뢰인은 '거짓'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 이후부터 수사담당자의 태도가 돌변해 오히려 피해자를 의심하는듯한 눈초리에 피해자에게 만약 거짓이면 무고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겁을 주더라는 것이다. 결국 의뢰인은 고소를 취소하고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까지 했는데, 이제는 무고죄로 처벌받을까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해자의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측정불가'였다.

거지말탐지기에 의한 검사란 피의자 등의 피검자에 대하여 피의사실에 관계 있는 질문을 해 회답시의 피검자의 호흡·혈압·맥박·피부전기반사에 나타난 생리적 변화를 폴리그래프의 검사지에 기록하고 이를 관찰·분석해 답변의 진위 또는 피의사실에 대한 인식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거짓말탐지기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에 대해 사실적 관련성을 가진 증거로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으려면, "첫째로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상태의 변동이 일어나고, 둘째로 그 심리상태의 변동은 반드시 일정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셋째로 그 생리적 반응에 의해 피검사자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가 정확히 판정될 수 있다는 세 가지 전제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마지막 생리적 반응에 대한 거짓 여부 판정은 거짓말탐지기가 검사에 동의한 피검사자의 생리적 반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장치여야 하고, 질문사항의 작성과 검사의 기술 및 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하며, 검사자가 탐지기의 측정내용을 객관성 있고 정확하게 판독할 능력을 갖춘 경우라야만 그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는 없다.

따라서 피고인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미국 유타대학 심리학 교수 라쉬킨과 키셔 등이 연구개발한 유타구역비교검사법을 사용했다는 것인바, 기록을 모두 살펴봐도 위 검사법이나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이같은 세 가지 전제요건을 모두 갖췄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피고인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결과회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여 거짓말탐지기의 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형사변호인을 하다 보면 거짓말탐지기에 의해 수사의 방향이 좌우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수사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증거나 목격자도 없고 오로지 당사자의 상반된 주장만 있는 경우에 대질을 하고 그래도 애매하면 추가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너무 양쪽 주장이 팽팽하다 보니 쉽게 거짓말탐지기의 결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양쪽이 다른 결과가 나오면 그 때부터는 거짓 반응이 나온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 그런 것은 인지상정이라 필자도 피의자 변호를 하면서도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 '거짓'이 나오면 피의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거짓' 결과가 나왔어도 재판에서 유·무죄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같은편인 변호인이 보더라도 피의자의 '사기' 혐의가 짙은데도 거짓말탐지기 결과에서 '진실' 반응이 나오는 경우도 많이 봤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그만큼 많다.

위 의뢰인 A로 돌아가, 조사 당시 가해자에게는 변호사가 있었지만, 의뢰인은 변호사 없이 대질 및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피해자에게도 변호인의 조력이 있었으면 그렇게 무력하게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인데, 안타까움이 든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은 인공 두뇌를 가진 컴퓨터(Artificial Intelligence)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평생 1999년의 가상 현실을 살아간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인식세계의 진위를 기계로 판단한다는 것에 대해 왠지 영화 '매트릭스'가 연상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거짓말탐지기는 그저 기계에 불과할 뿐이고 神은 아닌데 말이다. / junebe21@hanmail.net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