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충청' 변호사·법무부 자문위원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경찰관이 올 6월까지 현장 단속을 통해 범칙금을 부과한 건수가 114만2천41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54만2천87건 대비 110% 증가하고, 범칙금 부과금도 119억원에서 425억원으로 전년대비 114%, 300억원 넘게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와 함께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경찰이 현장에서 범칙금을 부과한 건수도 큰 폭으로 늘어났는데, 올 6월 기준 범칙금 부과건수(통고처분, 즉결심판)와 부과금액은 3만7천618건, 8억1천938만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2만5천355건, 4억3천394만원 대비 48%, 88%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비교적 징수하기가 수월한 교통범칙금 등으로 메우기 위해 교통단속 및 경범죄 단속을 강화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시민의 의혹 제기에 대하여, 경찰은 교통사고 발생의 증가와 올 초 개정된 경범죄처벌법 시행을 이유로 들고 있다.

선거때는 봐주기로 일관하다가 선거 때만 지나면 법질서 확립을 운운하며 단속을 강화해 과잉단속으로 공권력 남용이나 서민 피해가 우려되므로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단속과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그 주장은 단속으로 큰 부담을 지게 되는 많은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듯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주장은 정의를 후퇴하여 법적 안정성을 적절한 수준에서 보장해 달라는 것으로 판단되고, 그에 따른 애매한 조치는 법치국가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법이 지향하는 최고의 이념은 정의 실현과 법적 안정성이고, "실정법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 정도에 도달한 때에는 실정법은 더 이상 타당한 법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정의에 관한 라드브루흐의 공식에 비추어 현재의 강화된 교통단속과 경범죄의 처벌이 누가 보아도 참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면 지켜져야 할 정의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현재의 법상태가 부정의하다고 단정할 수 없더라도 다수 국민이 불만을 표한다면 "불량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당연히도 국가는 그 불량한 상태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수정할 의무가 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위와 같은 불만은 범칙금이 소득과 관련없이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부과된다는 점에 기인한 듯하다. 행위에 벌을 과하는 이유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일반인에게 준수를 강제하는 효과(이를 일반적 심리강제라 한다)를 보기 위함이다.

동일한 속도위반에 고소득자, 중산층, 극빈층 할 것 없이 획일적으로 부과되는 10만원은 고소득자에게 일반적 심리강제를 기대할 수 없는 껌값이고, 극빈층에게는 경악이 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불평등한 심리강제와 부담이 재산에 반비례하는 역진적 결과를 발생하게 만드는 지금 법 상태는 일반적 심리강제로서의 형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형사정책상으로도 불량해 보인다.

이와 같은 절대적으로 평등한 범칙금의 역진적 효과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유럽선진국에서는 소득에 따라 범칙금을 다르게 부과하는 이른바 '차등 범칙금제'를 도입하는 나라가 증가하고 있다. 차등 범칙금은 범칙금 부과사항이 발생하면 위반자의 1일 평균 소득에 위반행위에 해당하는 범칙금 일수를 곱하여 산출한다.

차등 범칙금제를 도입한 독일이나 핀란드는 억대의 범칙금 부과 건이 종종 발생한다. 핀란드에서는 2002년 휴대전화 제조업체 부회장이 제한 속도 50㎞ 구간을 75㎞로 달렸다가 약 1억6천700만원의 범칙금 통지서를 받은 적이 있고, 2004년엔 유명 제조업체 대표 아들이 25㎞ 제한 구간에서 50㎞의 속도로 운전하다 약 2억4천600만원짜리 범칙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차등 범칙금제 도입은 학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를 도입하기에 아직도 현실적 난관이 많다고 하여 입법이 지체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현실적 난관이 기득권 침해를 받지 않고자 하는 배부른 자의 배짱이나 국가의 게으름 탓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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