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다.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참가자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궁금해서다.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참가자들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면서 때론 감탄하기도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 나오면 왜 그런지 나름 분석을 하기도 한다. 수많은 채널에 워낙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심사위원의 말투가 유행어가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필자만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늘 학생들을 평가해야하는 직업을 가져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시험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판단할 수 없으므로 늘 평소 태도와 학교생활 참여 정도 등으로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취업 추천을 하거나 공부를 더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딱히 어떤 규칙을 가진 것도 아니니 경계가 모호하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의 심사도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비난인지 비평인지 모를 때가 많은 것이다.

내가 한 말은 정당한 비판 같은데, 나에 대한 비판을 들으면 그건 비난으로 들린다. 논문심사를 할 때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내 논문에 누가 의견을 내기라도 하면 그를 받아들이지 못해 버럭 했던 적도 있고, 명절 준비를 하는 올케를 보면서 그러면 안된다고 시비를 가려주면서도 결국 내 집에서는 나도 똑같이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비판을 그냥 그대로, 시비를 가리는 비평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누가 내게 부정적인 의견을 비치면 여지없이 비난으로 들린다.

실무현장에서 일을 할 때 이 고민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 땐 모든 외부 의견은 비난으로 들려 오히려 그들을 비난한 적도 있었다. 어떤 말도 내게는 적대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으니 마음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판(批判)이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따진다는 의미이지 비난(非難)과 동일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올바른 비판이 되려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모순은 있다. 내가 하는 비판은 결국 나의 경험과 논리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무엇이 옳은 것일까. 공정한 것, 공평한 것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대안 없는 비판과 비난만 난무한다고 우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한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 그것이 진심어린 관심인 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땐 세련되지 못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만큼 유연하지 못했고, 내 사고에 갇혀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아무 논리도 없는 의미 없는 말들만 오갔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그 때 그 사람들과 새롭게 인연을 만들고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를, 우리를, 내가 속한 조직을 비판하고 비난하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무렇지 않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그들과 다시 새로운 인연이 피어날 줄 누가 알았을까. 새삼스레 섣불리 남을 비판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의 비판을 비난으로 듣지도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주장은 하되 편향성을 경계하고 적당한 거리를 둔 비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공정함과 공평함이 사라진 복잡한 사회 속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애써봐야겠다. 애쓴 만큼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의 감동은 1등을 배출 했을 때가 아니라 비판을 받아들인 참가자들이 그것을 수용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장했을 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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