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아시다시피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쓰여 있는 글귀다. 사각지대를 뜻하는 말로 자동차에 쓰여 있어서 알게 됐지만 요즘은 연일 보도되는 가족의 동반 자살 소식에 이 글귀가 떠오른다. 그들은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서울 송파구 반지하 월세방에서 목숨을 끊은 세 모녀 사건, 장애를 앓는 딸과 어린 아들을 보살필 수 없어 함께 자살을 택한 일용직 40대 가장의 이야기는 사회복지사로 살고 있는 내게 반성과 안타까움을 갖게 한다.

이들의 죽음으로 새삼스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슈가 되었다. 2000년에 시행된 이 법은 우리나라의 가장 기초가 되는 사회보장제도로서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국민들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완화 되었음에도 여전히 수급자가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적어야 한다. 2014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는 3인 가족의 경우 132만 9천 원이 넘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이마저도 최저생계비에서 현물로 지급되는 의료비, 교육비 등의 지원액을 제외하면 최고로 지급받을 수 있는 금액은 107만 원 정도이다. 게다가 소득은 근로소득 뿐 아니라 추정소득까지 합해서 계산하므로 직업이 없어도 근로능력이 있다면 소득여부와 관계없이 추정소득을 근거로 수급자가 될 수 없다.

둘째는 재산기준이다. 대도시는 5천400만 원, 중소도시는 3천400만 원, 농어촌은 2천900만 원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재산도 넘으면 안 되고, 소득도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면 안 된다.

마지막 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부양의무자가 재산이나 소득이 어느 정도 있으면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 물론, 부양의무자가 부양비를 보내지 않아도 부양비를 보낸 걸로 간주해서 그것도 합산을 하게 되므로 자식과 인연이 끊겨도 자식이 있으면 부양의무자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만 기초생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송파구 세 모녀는 이 조건 어디에도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와 두 딸 모두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었을 것이므로 당장 소득이 없어도 한 사람당 약 50만~60만원 정도의 추정소득으로 소득인정액이 산출됐을 것이므로 지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위기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신속한 지원을 한다고 마련된 긴급복지지원법에도 어머니가 팔을 다치긴 했지만 두 딸이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그 '긴급'한 상황에 해당이 안된다고 해석해, 지원이 안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도는 있으나 몰라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초적인 장벽이 너무 높아 오를 수 없었던 것일까.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하는 노숙인에게 주소를 묻는 제도로는 사각지대 해소는 요원한 일이 아닐까.

가난해서 지원신청을 해도 가족이 부양할 만하다고 판단되면 가족에게 떠넘기는 현재의 제도로는 언제든 '송파구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장실 3남매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얼마 전 염전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노숙인이 탈출했을 때에도 정부는 사각지대를 찾아나섰다.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의 책임을 묻고, 이들의 업무는 또 산더미처럼 늘어나 있을 것이다.

찾아지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현실화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저생계비 기준, 재산 기준의 조정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가 필요하다. 부양가족이 실제로 부양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다 정확히 조사해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적용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하에 생활유지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제발 기초적인 것만이라도 법대로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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