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사람&사람'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1997년 겨울 58세의 김씨는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머리를 다쳐 서울 보라매병원으로 응급후송되었다. 다음날 수술을 한뒤 상태가 호전됐지만, 뇌수술에 따른 뇌부종으로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김씨의 처는 치료비가 자신의 재산능력에 비추어 상당한 부담이 되고, 금은방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후 17년동안 무위도식하면서 술만 마시고 가족들을 구타해온 남편이 가족들에게 계속 짐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사망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담당의사를 설득시켜 남편을 퇴원시켰고, 결국 남편은 사망에 이르렀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의사가 치료를 중단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그 처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사망케했다며 담당의사를 처와 공동정범으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했다. 이처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사망의 결과를 '예견'하였음에도 이를 어쩔 수 없다는 심리상태로 '용인'하였는지, 즉 미필적 고의가 핵심 쟁점이다.

최근 검찰이 세월호 참사의 형사 책임을 물어 15명을 기소하면서 선장과 기관장 등 4명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유기치사죄나 특가법상 도주선박죄에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지만, 살인죄는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사에서 '부작위'란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되려면 먼저 작위의무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선장, 기관장 등은 여객운송 계약상, 법률상(선원법, 수난구호법) 배의 위험 발생시 승객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느냐의 여부다. '미필적 고의'란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가능성을 인식(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인용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예컨대,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밤에 자기의 집에 방화할 때에 혹시 옆집 잠자던 사람이 타죽을지도 모른다고 예견하면서도, 방화한 경우와 같다. 미필적 고의는 불확정적 고의의 하나다. 보험금 사취를 위한 방화에 대해서는 확정적 고의가 있으나, 그로 인해 옆집 사람의 연소사의 결과에 대해서는 미필적 고의가 있게 된다. 미필적 고의는 고의와 과실의 중간영역에 위치하는 인식 있는 과실과의 구별이 어렵다.

방화로 인해 옆집의 잠자던 사람이 타죽을지도 모른다고 예견한 점에서는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이 공통하지만, 타죽어도 할 수 없다고 인용한 심리상태는 미필적 고의가 되고, 아직 초저녁이어서 타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고히 믿는 심리상태는 인식 있는 과실이 된다고 이론상 구별되지만 실제상 그 입증은 어렵다.

검찰은 이들 4명은 승객들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용인하고 탈출을 감행한 것이며 이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한다. 즉, 그들은 세월호의 핵심요원이고 계약상, 법률상 구조의무가 있는 점, 그 당시 승객을 용이하게 구호할 수 있음에도 퇴선명령도, 구호조치도 하지 않은 점, 또 선장과 기관장, 선원 등은 탈출 전에 자체 모임을 가졌으면서도 누구도 승객들의 탈출을 지시하거나 안내방송을 하지 않았으며, 특히 이들이 제복을 입고 있으면 먼저 구조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미리 옷을 갈아입은 점 등에서 승객들의 사망 위험을 외면한 미필적 고의가 성립된다고 밝혔다. 다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예비적으로 유기치사와 과실선박 매몰 등의 혐의를 추가한다고 한다.

현재 이 선장 등 전원은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지 않았고, 변호사들도 그들의 변호를 기피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는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이다. 향후 재판에서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과연 퇴선명령만으로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는지, 피해자를 사망자 전원으로 볼 수 있을지 등의 핵심 쟁점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 측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전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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