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썸탄다'는 국적불명의 단어가 요즈음 널리 사용되고 있다. 대중가요의 제목에도 있는가 하면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MC들이 소위 '썸타는' 이야기로 호응을 얻기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썸탄다'는 단어는 '타인(특히 이성)과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라는 의미의 영어 Something의 '썸'을 어근으로 하여 우리말 동사 '타(承)다'가 붙어서 만들어진 신조어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썸타는 관계는 일방적으로 끝내도 상대방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관계로 이해되기 때문에 요즈음 같은 인스턴트 세대에 적합한 인간관계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하는 듯 하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영희와 철수가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후에 그들이 러브라인을 형성하여도 이상할 것 없고, 그저 남남처럼 모른척 살아가도 욕먹지 않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면 영희와 철수는 썸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애매한 관계는 과거에도 있어 왔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로부터 관계를 추궁당하게 될 것 같으면,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길게 각종 미사려구를 동원하여 설명하여야 했던 복잡한 관계가 요즈음은 단지 '썸탄다'는 말로 쉽게 정리된다.

예컨대,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과거급제하기 전의 성춘향과의 관계를 구구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면, 이제는 성춘향과 이몽룡이 썸타던 관계였다고 설명만 하면 된다.

썸타는 것이 미혼 남녀의 밀당의 기술로 머물 경우에는 춘향전처럼 가연(佳緣)의 시발이 되어 한편으로는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들의 썸타는 관계도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경우 말처럼 쉽게 정리되지만은 않는다.

가정있는 사람이 썸타는 경우에는 간통으로 형사처벌까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배우자로부터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당할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일방적으로 강한 썸을 타려고 하면 스토커가 된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심각한 법적인 문제를 남긴다. 몇 해 전에는 검사와 변호사가 썸타다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예도 있다는 점에서 공인의 신분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썸타는 것이 비단 개인의 이성관계에서만 문제가 되랴.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합쳐져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관피아도 고위관료가 회사와 부적절하게 썸타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그 본질이고, 이번에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원인도 소위 전관예우의 썸을 탔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개인이 썸타게 되면 그 무책임한 관계는 몇몇 법조항만 피해가면 아무리 나빠져 봐야 망신을 받는 선에서 멈추게 된다.

기껏해야 사람가지고 논 죄(?)로 썸남(혹은 썸녀)으로부터 따귀 한 대 맞거나, 카페 한켠에서 얼굴에 물한컵 뒤집어쓰는 정도로 끝나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사회가 썸타게 되면 세월호 사건처럼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거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 등으로 사회가 치러야할 대가는 혹독해 진다. 그런 까닭에 고위관료의 낙하산 인사를 제한하거나, 전관의 개업지를 제한하는 등 사회적 썸타기 예방 법률이 필요하고 실제로 다양한 입법도 시도되고 있다.

어느 유명한 언어학자는 말은 세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썸탄다는 국적불명의 단어를 통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관계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우리사회 단면을 보는 듯하여 씁쓸한 마음이다. 언젠가는 남과 북이 통일을 위해 썸타고 있고, 여당과 야당이 국민복리 증진을 위해 썸타고 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서 흘러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