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된 유병언에 대해 범람하는 인터넷 보도기사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그가 걸치고 있던 유명 브랜드 상의와 신발을 보면 그가 유병언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을거란 기사였다. 처음 이 글을 읽고 잠깐 '욱'했다. 어찌 입은 옷과 신발로 사람을 추측하고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도피 중이던 아들의 검거에도 그의 도피를 도운 여성과의 관계가 집중보도 되거나 신발장에서 영국의 유명브랜드 신발이 있다는 본질을 벗어난 보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보도들이 이들의 죄를 묻고 판단하기 이전에 다른 데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죽음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세간의 의심을 지우는 일이나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법이 할 것이고, 사회복지사로서 노숙인으로 발견된 유병언에 대한 보도가 마음에 안든 건 그저 '노숙인은 유명브랜드의 옷을 입으면 안되는가', '왜 그런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가'하는 부분에서다. 노숙인에 대해 사회가 가진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 보도내용에서 이 사회는 노숙인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싶었다.

노숙인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중 하나에 해당하는 18세 이상인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이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숙 등을 예방하고 노숙인 등의 권익을 보장하며, 보호와 재활 및 자활을 마련하여 노숙인 등의 사회복귀 및 복지를 향상시킬 책임을 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필자는 '부랑인'으로 불렸던 노숙인을 보기 위해 서울 출장 길에 일부러 서울역을 들른 적도 있다. 요즘은 다양한 쉼터나 일시보호시설이 있어 실제 거리노숙인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지만 그래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연구차 대전역 인근 노숙인 쉼터를 방문했었다. 말로만 듣던 쪽방을 직접 가보고 너무 열악한 환경에 안타까웠던 기억이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내게 노숙인은 그저 '불쌍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한참을 잊고 지냈었다.

그러다 최근 기회가 있어 청주와 음성에 운영 중인 노숙인 시설을 다녀온 뒤 이런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그들이 노숙인이 된 이유도 노숙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내 분야, 내 일이 아니므로 그냥 지나쳤었지만 막상 가보니 대부분 시설이 쾌적한 환경과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고 구성원들 스스로 도우며 사는 생활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필자보다 재능이나 기능이 뛰어난 사람도 많았다. 단지, 그들은 거처가 없어 시설에 머물 뿐이었다.

물론, 여전히 무더위와 강추위를 피한 후 시설에서 퇴소했다가 다시 재입소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이뤄지지만(이 부분을 담당자는 방랑벽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건강이 악화되었던 사람들이 규칙적인 생활과 고른 영양섭취로 건강을 되찾는 일이 많아졌고, 사회기술교육까지 더해져 취업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다양한 취미를 갖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그들은 '불쌍한 사람'이 아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청주에는 노숙인이 있을까? 흥덕대교 아래 노숙인을 본 사람이 있다고도 하고, 무심천 근처에서 봤다고도 하고, 목격담이 수월찮게 들린다. 결론을 말하자면, 청주에도 거리노숙인은 있다. 노숙인으로 발견되면 연고자를 찾아 연락을 취하지만 그것이 어렵거나 무연고자인 경우 노숙인의 장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한다. 유병언인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냥 무연고자 장례처리절차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관련 수사는 미스테리로 남아 너무 많은 국가의 자원이 낭비되었을 것이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작은 도시 순천에서 노숙인이 숨진 채 발견된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지 않았을까. 노숙인의 신원을 밝히는 일에 왜 더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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