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3년 만에 안경을 바꿨건만 아무도 알아보는 이가 없다. 누가 알아봐준다고 새삼 기분이 좋아질 것도 아니지만 막상 아무도, 심지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니 서운한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서러움은 외모의 변화를 몰라봐서가 아니라 다초점 렌즈에 적응해야 하는 두통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초점 렌즈를 권하는 안경사에게 "노화 때문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니시고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으로 가까운 거리의 노출이 많으니까 눈이 피로감을 쉽게 느끼거든요. 피로를 덜어주려는 거에요. 고등학생들도 많이 써요"라며 위로한다. 안그래도 가까운 거리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을 잠시만 들여다봐도 눈이 아프던 차에 그 말에 덥석 다초점렌즈를 맞추고 보니 요며칠 적응하느라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다.

안경사의 설명으로 위로가 되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눈의 '노화'에 대한 걱정이 있다. 글의 주제를 노화로 삼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무심히 지나쳤지만,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고 중부매일 기획기사 타이틀로 제시된 '늙어가는 사회, 젊어지는 노인'이라는 글귀에 유난히 공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 들면서 늙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자연의 법칙이기에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노화를 거쳐 사멸에 이르게 된다.

이런 노화를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오래 사용하는 과정에서 물건이 마모되어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는 '마모이론'도 있고, 노화와 수명은 이론적으로 타고난다는 즉, 사람의 형질을 결정짓는 유전자 속에 특정인의 노화와 수명에 관한 모든 정보가 미리 입력되어 있다는 '프로그램 이론'도 있다.

또한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호흡 과정이나 음식을 소화하는 대사 과정에서 산소가 불완전 연소돼 나오는 일종의 찌꺼기인 활성산소가 초과되면 인체는 손상을 받고 노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활성산소 이론'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신체적인 노화에 대한 이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노화 이론과 성공적인 노화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연구들이 발표돼 있다. 늙어가는 것이 반가운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마냥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후회를 자주한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사는 데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깨닫게 되기 때문에 하는 후회다. 살아 있는 현실이 더 감사하고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방황했던 20대 보다, 치열했던 30대 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불명예스럽게도 우리 나라는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다. 특히,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노인의 29.2%가 우울 증상을, 11.2%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11) 결과는 충격적이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아직 행복하게 살아가기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기사에 다뤄지는 노인들의 '젊은 생활'이 기대 된다. 그 지면에서 연금 등으로 소득이 보장되어 안정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뿐 아니라 가난하지만 행복한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

일제강점기, 해방직후의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와 산업화라는 치열한 역사를 헤쳐오면서 늘 생존의 위협에 시달렸던 지금의 빈곤한 노인들은 아직도 그 위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노인 빈곤에 대한 관심이 노화방지 화장품에 대한 관심 만큼만이라도 일어준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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