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쓰던 컴퓨터가 말썽을 부려 포맷을 하고 나니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 덕에 어수선하던 폴더 정리를 하다가 지난 3월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이 있은 후 지역 방송국에서 인터뷰한 내용의 파일을 발견하고는 금새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연이어 들리는 생활고를 비관한 가족 동반자살 소식 때문이다.

그 때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자살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2012)도 15세 이상 인구의 40.4%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 나라의 상대적 빈곤 수준이 훨씬 높고, 도움을 받고 싶어도 국가의 서비스 지원 자격 문턱이 너무 높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원고를 보니 이런 말도 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우울 때문에 자살한다' 생각 하는데, 왜 우울한지가 중요한 것이다. 우울의 원인이 빈곤 때문인지, 심리적 이유인지 파악해서 원인을 제거하고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며, 지금은 경제적 빈곤이 가장 큰 이유이므로 정부 차원의 더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위암투병 중인 소설가 이외수는 자살에 대해 '생명체로서의 절대 비극. 그러나 가장 강렬한 삶에의 갈망'이라고 말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관련 기관을 통해 자살예방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노력이 펼쳐지고 사회복지사들은 위험군으로 불리는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더욱이 자살 예방을 위한 지금의 정부 정책은 교육 중심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적어도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을 예방하는 것은 다른 자살의 요인보다 해결책이 쉽게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수급 자격 완화를 통해 근로능력 여부가 아니라 실질적인 소득이 발생하느냐 아니냐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현재처럼 근로 경험이 있다고 추정소득을 산출하거나 교류가 없는 부양가족으로부터 간주된 소득이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이든 긴급복지제도이든 간에 어느 한 곳에서는 누구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적극적인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자원을 발굴하고 연결해 주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과 현장 지원이 전제되어야 하며 자살은 예방 할 수 있다는, 막을 수 있다는 인식 개선을 통해 주위의 관심을 이끌고 환기시켜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자살하는 일은 자살을 결심하거나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의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가 자식을 죽게 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이 정말 '동반자살'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 준다. 즉, 부모도 자식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명에 대한 존엄함, 인간에 대한 존중 의식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를 기준으로 하는 자살률의 관점에서 농촌지역의 자살률이 높다고 말하지만, 사실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를 보면 도시지역이 월등히 많다. 2012년 통계로 볼 때 1만4천160명이 자살했고, 그 중 6천명 정도(자살자 수의 41.9%)가 서울과 6대 광역시에서 발생한 것이 그 중요 증거다. 통계적 자살률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자살자 수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엉켜버린 컴퓨터를 포맷하듯이 인생도 포맷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불가능하니, 지금 이 상황 그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무조건 도와야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