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숲해설가

노란 은행잎들이 길가에 뿌려지고 이제 나무의 휴식기가 시작됐습니다. 느티나무의 올해 난 여린 가지들도 제 갈 길을 찾아가고 봄에 가로수 정비로 베인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가지도 상처가 아문 듯이 보입니다.

늦가을은 나무가 옷을 벗고 감춰두었던 자신의 모습의 실체를 보여주는 계절입니다. 이제 나무들은 어떤 꿈을 꾸게 될까요. 한 해 동안 열심히 노동으로 기록된 잎들은 땅으로 내려옵니다. 왜 나뭇잎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잎을 떨어뜨릴까요?

먼저 잎이 하는 역할을 기억해 봅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광합성작용, 호흡작용, 증산작용을 먼저 기억이 날 것입니다. 이 모든 작용은 과학자들이 밝혀냈는데 이것은 식물이 살아가는 생존에 관련된 기초적인 활동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 잎은 감각기관의 역할을 하는데 빛과 기온을 감지하고 꽃을 피울 시기와 눈을 맺는 시기를 호르몬을 통해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정리하면 잎은 나무의 영양분을 섭취하는 입의 역할, 방향을 보는 눈의 역할, 진동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귀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감정으로 살아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잎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모든 생존 활동을 정지시킨다 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나무는 왜 겨울에 활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면 점점 나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좋은 현상입니다. 겨울에 빛이 적어서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답은 겨울에 비닐하우스의 식물들은 정상적인 광합성을 하며 자랍니다. 빛은 광합성하기 충분한데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바로 기온입니다. 하지만 기온보다 깊은 이유는 수분(물)에 있습니다. 광합성작용, 호흡작용, 증산작용 모두 수분이 필요하며 수분은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수분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바로 언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되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수분을 갖고 있는 부분 즉 살아있는 세포는 모두 얼어 죽게 됩니다. 특히 수분이 충분히 필요로 하는 잎은 제일 먼저 세포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나무는 먼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준비합니다.

겨울이 되면 나무는 남은 수분을 영양물질과 함께 얼지 않은 곳으로 이동시키는데 그곳이 땅속에 있는 뿌리 부분입니다. 땅 속 뿌리에 영양분과 수분을 함께 저장하는 것은 소금물처럼 어는점이 낮아져 영하의 추위에도 얼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늦가을에 뿌리 약초를 캐거나, 겨울을 살아서 보내는 냉이, 씀바귀의 뿌리가 몸에 좋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활동이 정지된 잎은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를 없애는데 이때 초록빛이 사라지게 됩니다. 초록빛 안에는 나뭇잎의 본연의 색소가 남아있는데 이 색소의 구성이 어떠냐에 따라서 붉은색, 노란색, 갈색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이 색소가 서로 섞여 다양한 색들로 단풍이 드는 것입니다. 나무도 단풍이 들고 서서히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건강하다는 표현입니다. 단풍이 들지 않고 푸른 잎이 뚝뚝 떨어지면 분명 나무는 병이 들었거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떨어지는 단풍을 보고 있으면 사람과 참 닮아있습니다. 잎눈이 터진 후 시린 꽃샘추위를 솜털 같은 어린 몸으로 보내고 나서 곤충의 갉힘에도 착실히 몸을 키워 꽃망울을 바라보았겠죠. 여름의 거센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보내고 나서 어린 열매를 멀리 보냈습니다. 모두 한 잎 한 잎 살아온 일대기입니다. 이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진정한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사람의 삶 중에서 단풍과 같은 시절은 노년의 시기일 것입니다. 살아온 동안 쌓였던 많은 경험들이 색으로 드러날 때 마음의 풍요로움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언제나 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삶의 가치를 어린잎들에게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잎이 떨어져도 그 본체의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지키고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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