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이 셋, 가장이 암에 걸렸다. 홑벌이로 아이들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그에게 암선고는 청천벽력이었지만, 늘 그렇듯 그는 강하게 이겨내고 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는 4차 항암주사를 크리스마스에 맞아야 한다.

그의 급여는 기초생활수급자를 갓 벗어날 수 있는 만큼이다. 추운 날씨 속 바깥 일을 해야 하는 그는 쉴 수도 없다. 생계가 그에게 달려 있으니 그가 쉬면 가족들은 당장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다. 암이 초기에 발견돼 치료가 가능한 단계라는 것이 지금 그에게 유일한 다행인거다. 그것만도 감사하다는 그의 웃음도 아프다.

그의 암은 업무상 질병에 해당되지 않으니 산재 처리를 받을 수도 없고, 병가처리를 한다해도 보조금을 집행하는 사회복지기관에서 유급휴가를 줄 리 만무하니 지금 너무나 큰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휴가를 가자니 가족들이 걱정이고, 안 가자니 항암치료에 자기 몸이 고통스럽다. 그런 그에게 위로 한마디 건넬 수 없는 주변 지인들도 안타까울 뿐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이 시대의 가장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다. 질병으로 인한 휴가인 병가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에 따로 명시가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업무상 부상, 질병은 산재보험법에 따라 산재처리(요양·보상)를 하고 있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지만, 개인적 부상·질병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회보장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노동시장 이탈(퇴직)과 빈곤의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래서 회사에 따라 질병휴가에 대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근로계약상으로 임금을 유급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을 경우 그에 따르지만, 별도의 지급규정이나 관례상 지급한 경우가 없을 경우에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다행히 근로자가 개인 사유로 아프거나 다쳐 장기간 요양이 필요한 경우 상병휴직을 부여하는 상병휴직제도가 추진되고 있었다. 지난 4월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근로자가 업무 외 부상,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사업주가 1년 이내의 상병휴직을 허용하도록 하고, 정부는 휴직 기간 동안 상병휴직급여를 지급하도록 하는 '상병휴직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2013)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OECD 30개 국가 중 27개 국가에서 상병휴직 또는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도가 없는 나라는 미국, 스위스, 우리나라 3개국이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상병수당제도 도입을 권고한 바 있으며, 2012년 3월에는 정부합동으로 '제3차 근로복지증진 기본계획'발표하면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상병휴직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나, 아직까지 특별한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 공무원의 경우, 공무원법에 따라 신체·정신 장애로 장기요양이 필요한 경우 최대 2년간 휴직과 일정액(급여액의 70%)의 소득도 보전 받아 일반 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그의 상사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그에게 유급 휴가를 보내줄 수 있었을까. 무엇을 근거로? 그의 병이 암이니까? 아니면 한창 커나가는 자녀가 셋이라서? 그런 동정과 연민이 통할 수 있었을까 말이다. 수만 번 고민을 하고도 딱한 사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선례를 남기게 될까봐 겁을 내고 미안하지만 '무급휴가'를 다녀오라 권장했을 것이다. 형편 어려운 사람에게 동정과 연민이 아닌 권리로서 복지제도를 누리게 하려면 결국, 해결은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우선돼야 한다. 내 친구가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더 이상 힘들지 않도록, 하루 빨리 상병휴직급여가 시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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