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더불어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선돌은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또 경계나 이정표의 역할을 했다.
 거석(巨石)문화의 심볼이기도 한 선돌은 수천년을 흐르는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곳에다 치성을 드리면 득남을 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돌은 암선돌, 숫선돌 한쌍이 세워지는게 통례다. 도내에는 현재 5백여기의 선돌이 산재해 있는데 이중 50기정도만 짝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는 홀아비나 과부 형태로 있다. 애초부터 그렇게 세운게 아니라 근대화 개발과정에서 짝을 잃은 것이다.
 도내에서 대표적인 선돌은 이미 충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옥천 안터 선돌, 제천 입석 선돌과 최근에 지정된 단양 각기 선돌을 꼽을 수 있다.
 단양 매포중 교사로 있던 임광훈씨의 제보로 충북대 이융조 교수가 조사한 각기리 선돌은 기자(祈子)신앙과 선돌의 변천과정을 말해주는 충북의 대표적 선돌이다.
 옥천의 안터 선돌, 그리고 제천 황석리 선돌은 여성중심인데 비해 각기리 선돌은 남성 중심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각기리의 두 선돌은 17m를 사이에 두고 다정하게 눈짓하고 있는데 숫선돌 높이가 280cm로 암선돌 160cm보다 월등히 크다.
 「숫 바위」로 불리는 남성 선돌은 끝이 뾰죽하고 「암 바위」로 불리는 여성 선돌은 윗면이 둥그스레하다. 자연적으로 이런 형태를 고르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 암, 수를 구분할 수 있도록 일부러 손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기리 주민들은 숫 선돌을 중심으로 제를 지내는 등 신앙형태가 숫 선돌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숫 선돌 앞에는 가로 400cm, 세로 350cm정도 크기의 제단까지 쌓아놓았다.
 이처럼 선돌의 형태와 흐름을 보면 선돌초기의 모계사회에서 점차 부계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을 엿 볼 수 있다.
 각기리 선돌에는 다른 선돌에서와 마찬가지로 「굼」이 많다. 고인돌과 선돌에는 기자 신앙의 흔적인성혈(性穴)이 많이 남아 있는데 순수한 우리 말로는 이를 「굼」이라 하며 영어로는 컵 마크(Cup Mark)라 부른다.
 이곳의 굼은 갈거나 쪼아서 만든 형태로 숫선돌에서 15개, 암선돌에서 27개 등 모두 42개가 조사되었다. 구멍 크기는 지름 2cm, 깊이 0.5cm~3cm로 다양하다. 이 구멍에다 쌀 등 곡식을 넣고 찧기도 하고 비비기도 하면서 자녀 낳기를 기원했는데 지금도 그러한 원초적 샤머니즘은 일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포중 뒷편, 용추 연못물과 다른 도랑이 합치는 합수머리에 서 있는 각기리 선돌은 옥천 안터 선돌, 제천 황석리 선돌 등에서 보는것 처럼 물과의 어떤 친연성을 갖고 있다.
 각기의 각(角)은 용추의 용뿔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면 용과 돌, 그리고 물과의 함수관계를 설정해볼만 하다.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