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던 무슨 상관이냐?" 가끔 일반인들 간의 다툼에서 많이 들리는 친근한 항변이다. 법을 다루는 입장에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한마디 거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결론은 '전봇대로 이를 쑤시는 것은 자기 권리'라는 부분은 맞는 말이고, '남이 상관할 부분은 아니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물론 눈을 부라리면서 그런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 그런 고리타분한 말을 얌전히 들을 리 만무하지만 아무튼 정답은 그렇다.

헌법을 깊게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 전봇대로 이를 쑤실 자유 내지는 기본권을 갖는다. 이와 유사하게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성행위를 할 기본권', '위험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기본권' 등 일반인들 입장에서 "설마 그런 기본권이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온갖 기본권이 실제로 논의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말을 만들 수 있는 모든 형용사에 '~할 (자유)기본권'이라는 말을 붙이면 기본권으로 (일단은)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자유 내지 권리는 헌법 제37조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에 따라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예컨대,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성행위를 할 기본권'은 성매매를 금하는 법률이나, 의사에 반해서 타인에게 성행위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는 법률 등에 의해 일부 제한되어 있고, '위험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기본권'은 안전모를 쓰고 모터싸이클을 타야한다는 등의 법령에 의해 일부 제한받을 뿐이다. 결국, 누군가가 전봇대로 이를 쑤시는 행위는 기본권으로 인정되겠지만, 자신의 소유가 아닌 전봇대로 이를 쑤심으로써 전봇대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어 남이 상관할 수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성매매특별법의 합헌결정의 결과를 놓고 많은 네티즌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일부는 이런 망측한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도 있고, 위헌을 선언한 헌재 결정문이 너무 장황한데다 결론에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까지 소개하고 있어 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한때는 당연해 보였던 제한이나 법령이 국민의 법의식의 변화로 위헌적인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판사가 위헌여부가 의심되는 법령이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 이를 헌법재판소에 묻도록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위헌법률심판의 기능은 법률에 의해 제한된 기본권을 하늘로부터 원래 부여받은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판사들이 위헌여부를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권의 회복이 마냥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다는 주는 것이 아니다. 그 법령을 신뢰한 누군가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날벼락이 될 수 있다. 위헌선언은 많은 단계를 거쳐 섬세하게 결정되어야 하며, 그 과정을 그대로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한 법률 위헌여부의 심사는 법률의 제정목적이 정당한 것인지, 법률이 정한 기본권 제재수단이 적합한지, 택해진 제재수단이 입법목적을 달성하는데 기본권을 가장 조금 침해하는지, 그리고 침해된 개인의 기본권과 침해로 달성한 이익 중 무엇이 더 큰지를 평가하는 단계별 과정을 거쳐 신중히 이루어진다. 법률의 이면은 기본권의 제한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위헌선언은 다른 누군가의 신뢰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간통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다"라는 간단한 결론이 누군가에게는 장황한 설득이 필요한 이야기일 수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