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미인은 자연친화적인 미인이었다. 미의 기준이 별도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미인을 지칭할때 보름달 같은 얼굴, 반달같은 눈썹, 마늘 코, 앵두 입을 미인의 조건으로 들었다.
 체형적으로는 어깨가 좁고 광대뼈가 너무 튀어나오지 않으며 넓은 이마, 넓은 양미간, 두툼한 턱, 긴 목을 꼽았고 숱박이, 무모증, 굵은 뼈 등은 기피했다.
 미인은 곧잘 배꽃(梨花)에 비유되었다. 배꽃같은 환한 웃음, 배꽃같은 흰 피부, 그리고 말하는 소리가 배씹는 소리같아야 1등 미인으로 쳤다.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단아한 이마에 수정처럼 맑은 눈과 작은 입술이 매혹적이다. 트레머리 가발장식으로 얼굴을 꾸몄고 저고리 춤이 짧고 폭넓은 치마가 몸을 감싸고 있다.
 춘추시대의 제일미인인 서시(西施)는 월(越)나라 사람인데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대신인 범려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서시는 가냘픈 체형으로 폐병을 앓았다. 그때문에 가슴에 손을 얹고 얼굴을 찡그리는 포즈를 잘 취했는데 당시 여인들은 영문도 모르고 서시 흉내를 앞다퉈 냈다.
 당대(唐代)의 미인들은 얼굴과 몸매가 풍만하다. 당나라 제일의 미인인 양귀비(楊貴妃)도 그랬다. 양귀비는 본래 현종의 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였는데 현종이 며느리를 빼앗은 것이다.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결국 안녹산의 난때 장안(長安)의 서쪽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 최후를 마쳤다. 절세미인이었던 양귀비를 이백(李白)은 「활짝 핀 모란」에 비유하였고 백거이(白居易)는 그 비극적 사랑을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하였다.
 시대에 따라 미인의 척도는 다소 달랐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청순가련형이 어필하였고 당대에는 풍만한 체형, 요즘 말로 글래머 스타가 더 인기를 끌었다.
 조선시대 미인은 황진이를 비롯하여 소춘풍(笑春風), 한우(寒雨), 그리고 청주 관기인 춘절(春節) 등이빼어났으나 엄격한 사회환경으로 거의가 기녀 출신이다. 장녹수, 장희빈, 난정 등 여인천하의 주역들도 용모가 뛰어났음은 물론이요 최대의 스캔들을 뿌린 어우동은 시쳇말로 섹스어필형이었다.
 미인의 피부가 꼭 백색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것은 서구 우월주의의 시각에서 미인대회를 치렀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고 인류의 화석은 에치오피아 하다르 계곡에서 찾아진 3백50만년전 여인의 화석이다. 고고학계에서는 이를 흔히 「루시」라 부른다.
 이로보면 세계미인의 출발점은 다름아닌 아프리카다. 2001년 미스월드에는 사상최초로 나이지리아의 아그바니 다레고가 뽑혔다. 지난 11월 30일,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열기로 했던 2002미스월드 대회가 혼외정사로 아이를 낳은 여인에 대해 샤리아 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이라는 판결이 나자 각국에서 잇따라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나이지리아에서 2백여명의 사망자를 낸 유혈충돌만 빚은채 미의 제전은 무산되면서 런던으로 발길을 돌렸다. lbm@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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