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사진 / 뉴시스

2004년 경기도 수원에서 한 남자가 우연히 자신의 건물 앞을 지나가던 폐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에서 범상치 않은 고서적을 발견했다. 그는 모아둔 종이박스를 가져와 할머니 손수레이 실린 고서적과 맞바꾸었다. 고서적의 실체를 몰랐던 남자는 2년 뒤 KBS의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에 들고나갔다. 책을 살펴 본 감정위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고서적이 문헌에는 남아 있지만 실체를 보지 못했던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이었기 때문이다. 감정가 1억 원이 매겨졌다. 당시 한 감정위원은 "저는 이 프로에 출연해서 오늘이 가장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한동안 행방을 감추었던 '하피첩'은 지난해 4월 서울옥션의 고서적 경매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날 관심을 모은 고서적은 추정가가 3억5천만 원으로 가장 높았던 '월인석보' 9권과 10권이었다. 하지만 정작 최고가에 팔린 것은 '하피첩'이었다. 낙찰가는 7억5천만원. 낙찰자는 국립민속박물관이었다. 문화재청은 하피첩을 보물 제1683-2호로 지정했다.

하피첩이 화제를 모은 것은 낙찰가보다도 서첩(書帖)에 쓰인 사연 때문일 것이다. 하피란 노을빛깔의 붉은색 치마라는 뜻으로 사대부 여인들이 입었던 예복이다. 다산은 1810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가 있을때 부인 홍혜완이 보낸 낡은 치마에 인생의 교훈을 담긴 글을 정성껏 쓴 뒤 서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보냈다. 부인과 자식들에 대한 애뜻한 사랑이 담겨있다.

최근 충북 청주에서도 폐지 속에서 발견한 하피첩처럼 자칫하면 폐품 처리될 번한 귀중한 역사적 사료가 한 공무원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조선 영조때 왕실에서 열린 다양한 의례의 전모를 소상하게 기록한 서책인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조배 의궤(英祖大王 胎室 石欄干造排 儀軌)다.

1987년 청주시 낭성면 무성리 옛집 다락에 보관돼 있던 것을 향토사학자가 찾아내 옛 청원군에 기증했는데 귀중한 사료인줄 모른 당시 공무원이 공보실내 캐비닛에 방치한 것이다. 15년 뒤 문화공보실에서 근무하던 이규상(청주고인쇄박물관 운영사업과장)씨가 책자를 발견해 향토사학자에게 해석을 의뢰했다. 이 사학자는 이 책자에 영조 3년의 역사가 빼곡히 기록된 의궤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이 책은 이 씨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1990년 12월 충북 유형문화재 170호로 지정됐으며 지난달 3일 문화재청이 보물(1901호)로 지정했다. 다락에서 잠자던 의궤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29년만이다.

보물로 지정된 하피첩과 조선왕실 의궤는 자칫하면 폐지로 전락해 재활용되거나 폐기처분될 뻔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소중한 문화유물이라도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도 마찬가지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였던 故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직지심체요절' 복사본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현존하는 세계 첫 금속활자본은 독일인 구덴베르크가 1450년 찍은 '45행 성서'였을 것이다. 박병선 박사와 이규상씨의 예리한 문화적인 안목과 노고(勞苦)가 잠든 문화재를 깨웠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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