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조선 건국의 핵심 인물 삼봉(三峯) 정도전이 저술한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다듬어 만든 경국대전(經國大典)은 관료범죄 유형과 처벌 형량을 아주 세부적으로 명시했다. 지위를 이용해 뇌물을 받은 자는 장리(臟吏)라 일컬었고, 이런 유형의 관료범죄를 장오죄(臟汚罪)라 했다. 장오율(臟汚律)은 장오죄에 근거해 규정한 세부 형량을 기술한 것 이었다.

예컨데 자신이 감수하는 재물을 취한자는 감수자도(監守自盜)라 했다. 처벌은 매우 엄격했다. 부당하게 취한 재물이 1관(통상 3.75kg) 이하라도 장(杖·곤장) 80대를 치도록 규정했다. 최고 40관 이상을 취하면 참형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범인 오른팔에는 도관전(盜官錢), 도관량(盜官粮) 등 글자까지 새겼다. 장은 한차례 30대를 넘지 못하게 했는 데,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아 판결 전에 목숨을 잃는 사례도 허다했다 한다. 범죄 유형도 세부적으로 명시됐다.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없는 노인, 환자에게 지급할 식량을 임의로 줄인 관리에 대한 처벌 규정도 있었다. 관의 전원에서 나오는 채소나 과일 또는 관에서 만든 술과 음식 등을 가져가는 것조차 대상 이었다. 새끼를 낳은 관의 가축을 보고하지 않고 기르다 몰래 판매하거나, 교환한 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야 명문화 된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도 이미 명시적 조항이 존재했다. 이를 좌장치죄(坐臟致罪)라 일컬었다. 가만히 앉아서 부정한 재물을 취했다 할까. 재물을 도둑 맞거나, 구타를 당해 가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과 치료비외에 별개의 다른 재물을 받았더라도 처벌 대상이었다. 경국대전은 세조 때인 1460년 시작해 1471년 성종 때 이르러서야 완성됐지만, 건국 초기 삼엄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역성 혁명을 일으킨 직후(태조 3년·1394년) 민심을 수습해 나라의 기틀을 잡으려던 정도전作 '경국전'을 표지갈이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세기 말 이후 붕당정치, 정치적 분란이 극심해지면서 부정부패는 점점 가볍게 취급됐다. 장오율(臟汚律) 역시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붕당의 이해에 따라 양형 판단 기준이 흔들렸다. 당파 차원의 불법적 자금조달도 횡행했다는 게 사가(史家)들의 진단이다. 19세기에는 부정이 더욱 만연했다. 장리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려던 헌종(1827~1849년)은 "형장을 피할 수 있는 수령이 없다"는 신하들의 반대 탓에 좌절했다 하지 않는가. 사가들은 이런 풍조가 조선말기 민란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한다.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마련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접대 가능한 밥값과 범위조차 논란이 되고 있다. 경국전, 경국대전이 만들었던 시절과 김영란 법이 논의되는 세태가 비교되는 요즘이다. / 한인섭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