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광복절특사로 석방되기 위해 열심히 교도소 생활을 하는 모범수 재필은 어느 날 면회 온 애인으로부터 결혼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는다. 변심한 애인의 맘을 되돌리기 위해 탈옥을 결심 하는 그는 천신만고(千辛萬苦)끝에 6년 만에 탈옥에 성공한다. 하지만 탈옥한 날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든 순간 광복절 특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2002년에 제작된 김상진 감독의 '광복절특사'는 블랙코미디다. 하루라도 빨리 교도소를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고 숟가락하나로 땅굴을 파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약칭(略稱)으로 '특사(特赦)'라고 불리는 특별사면에 수인(囚人)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특히 밖에선 막강한 권한을 가진 회장님으로 불리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 운신의 폭이 제한된 재벌총수에겐 특사만큼 기다려지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특별사면은 형의 언도를 받은 특정 범죄인에 대해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절차 없이 자신의 특권으로 형의 전부나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을 선고받지 않은 사람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사람이 아닌 특정 범죄(종류)를 지정해 국회동의를 얻어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의 형을 소멸하는 일반사면(一般赦免)과 구분된다.

대통령의 특권에 따라 대상자가 결정되다 보니 박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방침을 밝힌 이후 한동안 정치권에 '특사민원'이 난무했다는 소문도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법무 비서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사면로비를 위한 거대한 지하시장이 있다"며 "사면 주선을 대가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거액의 금품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사면로비의 대상은 재벌총수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쯤이면 언론플레이도 성행한다. 재벌총수가 특사로 석방돼야 해당기업의 경영난이 해소되고 경제난국 극복에 기여한다는 논리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도 "민생·경제사범들은 잘못은 잘못이지만 많이 반성을 하고 있고, 벌을 받아서 다시 한 번 뛸 수 있도록 베풀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의 경제인 14명에 대한 사면·복권 가능성이 매스컴을 탔다. 하지만 특사로 풀려난 재벌총수는 신경근육계 유전병과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유일했다. 롯데그룹 일가등 일부 재벌총수에 대한 국민감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범법행위를 한 기업인에게 관대한 나라다. 실례로 미국에서 대규모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과 기업인은 미래가 없다. 에너지기업 엔론은 2001년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회사는 문을 닫았고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은 2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케네스 레이 회장은 중형 선고를 앞두고 심장마비로 옥사(獄死)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분식회계를 했어도 임직원은 징역 7년 이하 또는 벌금 7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그나마 형기를 모두 마친 기업인도 없다. 교도소 생활이 힘든 것은 생계형 범죄자나 재벌총수나 마찬가지다. 광복절특사에 기업인과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이 혜택을 받는다면 사회정의는 기대할 수 없다. 박상준 /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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