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설 명절 민족대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5일 오전 경기 오산IC 인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이 귀성길에 오른 차량들로 인해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2018.02.15. / 뉴시스

필자의 명절증후군은 초등학교 졸업식날 경험한 발렌타인 데이에서 시작되었다. 필자의 기억에 따르면 졸업식이 초등생의 최대 명절이라 할 수 있는 발렌타인 데이와 겹쳤었고, 그 날 개구쟁이로 동네에 이름을 떨치던 필자는 당연하게도 초콜릿을 한 개도 받지 못했다. 여느 초등학생처럼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온화하게 지내는 것을 거부하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 살던 동네는 물론이고 청주시내 이곳저곳을 다른 개구쟁이들과 누비다가 해질녘이 되어야 돌아오던 필자였기에 같은 반 여학우들로부터 초콜릿을 받을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인기의 척도로 여겨지는 초콜릿을 욕심냈고, 당연히 번번히 그 욕심은 덧없음으로 막을 내렸다.

그 이후에도 발렌타인 데이는 해놓은 것 없이 바라기만 하다 헛물켜면서 지내는 날이 되어버렸고, 사춘기를 지나 성년이 될 때까지 해가 쌓여갈수록 발렌타인 데이는 이성에게 어떠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로 굳어져 갔기에 발렌타인 데이는 필자에게 명절스트레스의 서막으로 기억되고 있다. 성년이 되어 초콜릿 없는 발렌타인 데이가 익숙해질 즈음 요즘 TV에 언급되는 취준생의 명절증후군을 겪었다. 필자는 취준생의 명절증후군에 대하여 크게 공감을 하고 있는데, 많은 법조인들이 그렇듯이 필자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법조인이 되기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왔기 때문에 다년간의 취준생 명절증후군에 대한 뼈아픈 경험이 매우 풍부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눈높이 만큼 성장하지 못한 필자에 대한 애정 어린 책망과 의심어린 격려와 같은 형용 모순의 애매한 워딩에 늘 맘이 불편했다. 그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어리시절 발렌타인 데이에 겪었던 명절 증후군은 엄청나게 가볍다 못해 웃음짓게 만드는 사소한 스트레스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에 비하면 그 또한 추억이다. 진정한 명절증후군을 겪는 주부들에게 돌을 맞을 수도 있는 치기어린 푸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필자가 요즈음 겪는 남편 명절증후군도 실은 그에 못지않게 크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되고, 법조인의 꿈을 이루고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가 된 지금 겪는 명절 스트레스도 실은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일종의 문명의 충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스트레스라고나 할까? 평소 당신의 가문의 뼈대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필자의 어머니께서는 힘에 겨워 보이는 차례상 준비에 온가족을 동원하고자 하신다. 이에 종교적 측면에서 혹은 실용적 측면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한 무리는 어머니의 어마어마한 차례계획에 대하여 조용하지만 치열한 항거를 벌이는 것 같다. 직업상 의견의 충돌에 민감한 필자로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충돌이 마냥 불편하기만 하다. 이럴 때는 한때 존재하여 가정의례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법령이 부활하였으면 하는 생각도 간절하다. 명절 때 TV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모두 어디론가 이동을 하는지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되어 있다. 그런대, 실시간으로 그 불편한 상황을 전하면서 항상 그 말미에는 "고향을 향하는 귀성객들의 마음은 설렌다."는 멘트가 따라붙는다. 그것이 명절에 즈음한 누군가의 염원인지 아니면 명절이 가슴 설레는 일인지 실로 궁금하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과거 농경시대에는 한동네 혹은 근거리 동네에 모든 친지가 살고 있어 한자리에 모이기가 수월했고, 친척들의 직업도 대부분 농사일 혹은 그와 연관된 일로 유사하여 특별한 날 친지들이 함께 모여 품앗이 하여 생산한 한해의 산출을 공유하며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며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한해의 추억을 이야기 하였을 터이니, 명절이 그날만큼은 풍요롭고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친지라 해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고, 직업도 제 각각이어서 전국민이 짧은 명절연휴 중 한날 동일한 시간에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명절 한날 한시에 모여야 가족친지간의 정을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평소 가족 친지간 왕래가 없었거나 무관심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평소 서로에게 잘하고 명절에는 혼잡을 피해 가족 모두 어디론가 훨훨 떠나면 명절증후군 따위는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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