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흥정 끝 후한 덤까지… 사람 사는 냄새 '물씬'

각종 나물을 다듬고 있다
각종 나물을 다듬고 있다

오대산 언니는 일찌감치 장터 한쪽에 채소를 펼쳐 놓는다. 아직 손님이 없는 이른 시간이지만 장사하기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다. 시장 옆에 바로 집이 있는데도 밥과 반찬을 간단히 차려 장터 골목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 멀리서 화물차를 끌고 와 대충 물건을 풀어 놓고 반주를 곁들여 아침을 때우는 사장님들도 있다. 서로 안부를 묻는 유쾌한 목소리와 더불어 시장은 비로소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옥산오일장 풍경
옥산오일장 풍경

각양각색 물건을 싣고 온 사장님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 상품을 정렬하는 모습은 여유롭다. 하루이틀 해온 일이 아니다. 신발을 파는 사장님은 옥산장에 다닌 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순대와 족발을 파는 포차 사장님은 15년째 되었는데 여기 온 순서로는 막내다. 허리가 굽은 채 조용히 채소를 다듬고 있는 옛 중앙문구사 할머니가 사실 제일 오랫동안 옥산장을 지키고 있는 분이라고 한다.

깔끔하게 손질된 반찬과 재료들
깔끔하게 손질된 반찬과 재료들

오전 7시 50분, 주말 장날 아침 시간에 앳돼 보이는 청춘남녀 대여섯 명이 이곳저곳으로 우르르 몰려다닌다. 맑은 목청에 꽁냥꽁냥 애교 있는 콧소리가 경쾌한 피아노 음악처럼 들린다. 가까이 가보니 태국 근로자들이다. 어물전에서 생선 몇 마리 사고 조금 망설이더니 조개 한 사발 더 산다. 채소전과 도넛 파는 마차에도 들른다. 까만 비닐 봉다리 양손에 들고 시장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어깨에는 웃음보따리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들뜬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태국식 음식을 요리해서 함께 먹을 모양이다. 낯선 타국에서 마트가 아닌 장터를 찾는 걸 보니 그것으로 향수를 달래는 듯하다.

태국 청춘남녀들의 어물전 흥정
태국 청춘남녀들의 어물전 흥정

시장 한쪽에 할머니 세 분이 나란히 앉아 좌판을 차렸다. 한 분은 장아찌, 한 분은 파김치, 또 한 분은 솔부추 등을 앞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애기엄마, 이 장아찌 좀 사가 봐. 이거 엄청 맛있어." 지나가던 애기엄마가 "아니, 오대산 언니 아녀요? 이제 식당 안 해유?" 하면서 장아찌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시장에서 '오대산 식당'을 운영했던 언니다.

햇마늘장아찌를 고르는 손님
햇마늘장아찌를 고르는 손님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이제 못혀." 애기엄마는 친정엄마가 생각난다며 무장아찌에 손을 댄다. "이거 얼마에요?" "한 개에 3천 원." "세 개만 주세요." 애기엄마가 만 원을 낸다. "만 원어치 사, 하나 더 줄게." 오대산 언니는 천 원을 거슬러줄 생각이 없다. 옆에 있는 파김치 할머니가 요때다 하고 "이거 파김치 내가 어제저녁에 담은 건데 양념 맛있게 했어. 조금 사가 봐." 애기엄마는 마지 못해 파김치 5천 원어치를 또 산다. 그러자 그 옆 솔부추 할머니가 "장아찌 무칠 때 솔부추 넣으면 무쟈게 맛있어. 이거 좀 사." 하면서 한 묶음 봉다리에 막 담으려는데 오대산 언니가 눈치 없이 말한다. "애기엄마, 가는 골파 쪼끔 덤으로 줄게." 애기엄마는 골파를 받아 들고 그만 솔부추 살 생각이 없어져 슬그머니 일어나버린다. 솔부추 할머니는 오대산 언니를 흘겨보며 삐죽거린다. "아유, 나도 좀 팔어 볼랬더니 눈치도 없이 덤을 주면 어쩐댜." 괜히 민망해진 애기엄마를 쳐다보며 85세 오대산 언니는 그저 해맑게 웃고 있다.

더덕 껍질 까기 달인
더덕 껍질 까기 달인

더덕 파는 사장님 손목은 마치 붓칠 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껍질을 최대한 얇게 벗겨내려고 세심하게 칼질하는 모양새가 달인 수준이다. 누가 옆을 지나치기라도 하면 금방 알아채고 한마디씩 던진다. "더덕 사가세요! 다 까드립니다. 엄청 고소해요." 손님이 덤을 달라고 하면 넉넉하게 얹어준다. 조금 더 달라고 말하면 거절하지 않고 또 그만큼 얹어준다. 말은 하고 봐야 한다는 진리를 더덕 사장님에게서 배운다.

장날 시인과 포장마차 사장님 부부
장날 시인과 포장마차 사장님 부부

장터를 좋아하는 상진 씨는 어지간하면 장날에 꼭 들른다. 한 바퀴 휙 돌아보고 필요한 물건을 산다. 인물이 훤한데다 목소리도 우렁차다. 한 번 시장에 납시면 장에 있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진다. 물건 사는 건 핑계일 수도 있다. 막걸리 한 병 시켜놓고 포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더 길다. 포차 사장님과는 십년지기 친구처럼 정이 들었다. 아는 사람 지나가면 붙들고 한 잔, 사는 이야기 하다 흥이 나면 한 잔 더, 오고 가는 술잔 속에 인생은 흐르고 정은 깊어간다.
 

텃밭 농부들이 좋아하는 모종들
텃밭 농부들이 좋아하는 모종들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자칭 타칭 장날 시인인 상진 씨가 몇 년 전에 쓴 자작시를 보여준다. '38광땡 옥산 장날/ 마음을 팔고 정을 사고 멋을 아는 장바닥/ (중략)/ 탁배기 한 잔으로 컬컬한 목 축인다/ 분위기에 취해 정에 취해 오늘도 장돌뱅이가 되어 간다'

장날을 지키는 사람들, 장날을 즐기는 사람들, 옥산오일장을 장터답게 만드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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