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따쿵따" 사랑채서 들려오는 흥겨운 가락 어깨춤 들썩

금계 마을에 살포시 어둠이 내린다. 밤을 반기듯 창 넓은 마을회관에 전등불이 켜진다.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뒤로 자그마한 산이 빙 둘러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사랑채로 들어간다. 잠시 후 신나는 풍물 가락 소리가 리듬을 타며 밤하늘로 울려 퍼진다. "징이나징이나 덩따쿵따 개갱개갱 덩따쿵따~~" 하늘에 계신 누군가에게 들려주기라도 하듯, 마을에 좋은 일만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듯, 소리에 정성이 묻어난다.
 

신명나게 합주하는 이들은 금계리 풍물단원이다. 2년 전에 구성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회관에서 연습하고 있다. 마을 일을 이끌어가는 곽희일 이장도 장구채를 힘차게 흔들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곧 다가올 마을회관 준공식에서 풍물 연주를 멋지게 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서로 마주 보며 합을 맞추는 이들에게 걱정거리는 요즘 말로 1도 없어 보인다.
 

오손도손사랑채와 경로당
오손도손사랑채와 경로당

작년에 신축된 마을회관에서는 넓은 창을 통해 마을 길과 앞들이 훤히 보인다. 건물 입구에 '오손도손사랑채'라고 쓰인 현판이 따뜻한 마을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사랑채 안에는 주민들이 모여 회의할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길게 자리잡고 있다. 그 옆으로 눈에 띄는 것이 화장실이다. 어르신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게 턱을 없애고 미닫이문을 설치해 공간이 넓다. 동선 따라 손잡이가 있어 안전을 배려한 고마운 마음이 돋보인다.
 

바람개비 만들고 있는 어르신들
바람개비 만들고 있는 어르신들

한쪽 벽에는 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컴퓨터와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모든 행사를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방에도 마을잔치를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기구와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동안 3년에 걸쳐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한 결과이다. 올해가 사업 종료 시점이라 3월 중에 준공식을 계획하고 있다.

쥐불놀이 준비하는 주민들
쥐불놀이 준비하는 주민들

"작년에는 정월 대보름날 달집태우기 행사를 크게 했는데 마을 사람들과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곽희일 이장은 작년 행사를 떠올리며 올해 달집태우기 행사를 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매년 정월보름에 윷놀이를 해왔는데 주민들이 어릴 때 하던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도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서 4년 전부터 '금빛달빛축제'라 이름짓고 대보름 행사를 시작했다. 첫해에는 10여 명이 참여해 자손들과 함께 조촐하게 치렀으나 점점 이웃 마을에도 소문이 돌아 작년에는 3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축제를 즐겼다. 내년에 다시 축제를 준비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청주곽씨 옥산 세거비와 사당.
청주곽씨 옥산 세거비와 사당.

금계리(金溪里)는 청주시 옥산면의 중앙부에 있으며 천수천(병천천)이 마을을 고불고불 감싸고 있다. 최초에 마을을 형성한 성씨는 청주 곽씨(淸州郭氏)로 17세손인 곽음, 곽비, 곽휴, 곽용 4형제가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면서 관직을 그만두고 두메산골인 금계리로 내려와 은거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지명인 금북리(金北里)와 신계리(新溪里)의 이름을 따서 금계리라 명했다는 내용이 옥산지(玉山誌)에 기록되어 있다.

청주 옥산면 금계리 전경
청주 옥산면 금계리 전경

아랫말, 웃말, 당아래, 도람말, 고리장골, 파락골, 공산안, 질울, 신계, 새우랭이, 아그배들, 등칡골 등 금계리 안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이름도 정겹다. 그중에 질울 마을은 특별하다. 마치 마을을 보호하는 듯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오목하다. 그래서 그런지 질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큰 벼슬을 한 인물이 많다. 옛 자유당 시절에 체신부장관을 지낸 사람을 비롯해 육군 준장, 중령, 대령 등 별을 단 사람도 여럿 있다고 한다. 금계리가 배산임수 지형으로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이라 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곽희일 금례리 이장.
곽희일 금례리 이장.

마을 앞을 흐르는 천수천에 관한 추억도 많다. "예전에는 투망을 쳐서 물고기 잡아 도리뱅뱅이를 많이 해먹었어요. 해질녘 투망치는 모습은 정말 그림 같았어요. 둥그렇게도 던지고 세모지게, 또는 길쭉하게 자유자재로 던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리운 풍경이지요." 아쉬운 점이 또 있다. "옛날엔 백사장이 넓고 엄청 깨끗했어요. 하얀 광목바지를 입고 냇가에서 놀아도 더러워지지 않았는데 언젠가 보가 생기고 준설작업이 되면서 차츰 백사장이 사라졌어요." 객지에서 은퇴 후 귀향한지 14년 차 된 곽 이장의 마음속엔 어린 시절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금계리 마을은 현재 75세대 13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점점 노령화가 심각해지는 농촌마을이지만 깔끔한 경로당과 새로 지은 오손도손사랑채가 있으니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다. 풍성한 풍물 소리처럼 금계 사람들의 따뜻하고도 활력 넘치는 공동체 생활이 이어지리라. /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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