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루 빻기부터 썰기까지… 손발 착착 떡 만드는 주민들

장수마을 떡방앗간을 지키는 사람들.
장수마을 떡방앗간을 지키는 사람들.

마을 공터에 연신 자동차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쌀자루를 하나씩 들고 경로당 옆 작은 건물로 들어간다. 구수한 쌀떡 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온다. 안을 살펴보니 여남은 명의 어르신들이 분주하면서도 차분하게 움직이고 있다. 잘 맞아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다. 이곳은 장동리 장수마을 떡방앗간이다.

맨 안쪽에 있는 방아에선 남자 두 분이 한 조가 되어 쌀을 빻는다. 그 옆에서 부녀회원 세 분이 네모난 시루에 쌀가루를 안치고 센 불로 떡을 찌고 있다. 시루 세 개를 동시에 찌다 보니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풍성하다. 알맞게 잘 쪄지면 뜨끈한 시루떡을 가래떡 빼는 기계 위에 퍽 소리나게 엎어 놓는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이 갑자기 바빠진다. 순임씨가 조그만 방망이로 쌀떡을 기계 아래로 밀어 넣으면 앞쪽으로 미끈한 가래떡이 쑥 나온다. 밑에서는 두 사람이 손을 맞춰 줄줄 나오는 가래떡을 착착 받아낸다.

순식간에 쌀 한 말이 길다란 흰떡으로 변신했다. 적당한 크기로 잘린 가래떡은 나오자마자 찬물로 샤워를 하고 노란 바구니 안에 줄 맞춰 나란히 눕는다. 바구니마다 금액이 적힌 형광색 이름표를 달고 옆 창고로 옮겨진다. 하루이틀 자고 나면 어슷어슷, 동글동글 얇게 썰어져 주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마침내, 설날 아침 온 가족에게 맛있는 빛을 발하리라.

장동리 마을 입구 모습.
장동리 마을 입구 모습.

장수마을 떡방앗간은 마을사업이다. 벌써 6년째 이어오고 있다. 길다란 가래떡과 장수마을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노인회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는데 부녀회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손수 떡쌀 빻는 기계를 맡아 고운 쌀가루를 만들어 내는 윤병무 노인회장님(83)이 방앗간의 총책임자다. "2016년에 우리 어머니가 95세 되셨었는데 청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우리 마을을 장수마을로 지정해줬어. 그때 마을사업으로 방앗간 시설을 지원받았지."

자발적으로 참여한 주민들끼리 자연스럽게 팀이 구성되었다. 마을사업이란 게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오랫동안 잘 운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데 모두 화목하게 일하고 있다. 찾아온 손님들도 이곳엔 정이 넘친다며 칭찬할 정도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짜러 오는 사람, 고춧가루, 도토리 가루 등을 내러 오는 사람들이 방앗간을 찾는다.

마을 경로당과 떡방앗간 전경.
마을 경로당과 떡방앗간 전경.

마을 살림살이를 맡은 윤승섭(66) 총무는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일꾼이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방앗간 업무를 총괄한다. 가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으로 고단함을 쫓아내기도 한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덕분에 심심하지 않고 주민 단합도 잘 되고 마을이 활기찹니다." 승섭씨는 1985년에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은퇴 후 귀향한 지 3년째다. 텃밭을 가꾸며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와 정자.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와 정자.

장동마을은 곡수(曲水), 담골(당골), 자명골(自鳴-)이 합쳐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담골은 동림산과 망덕산 자락이 담처럼 사방으로 둘러 있어 붙은 이름인데 당골로도 불린다. 행정 이름은 한자로 된 장동리(墻洞里)이다. 장동리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성씨는 조선시대에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며 지금도 마을 구성원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역대 이장 중에 윤씨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마을 주민들은 4년 전부터 동림산에서 독립운동가 윤병운 열사를 기념하는 해맞이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윤병운 열사 공적비.
윤병운 열사 공적비.

윤병운 열사는 1927년 장동리에서 태어나 서울에 있는 성남중학교에 진학했다. 1942년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 집에 내려온 그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비밀결사 조직인 신진당을 만들었다. 만세운동과 일본 총독 살해를 목적으로 거사를 준비하다 일경에 발각되었다. 이듬해 인천소년형무소에 투옥되어 고문을 당했으나 오히려 재판정에서 항일 독립의 뜻을 더욱 강력하게 밝혔다. 결국 모진 고문으로 인해 광복 직전인 1944년 17세의 나이에 순국했다.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으면서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공덕비를 세우고 열사의 뜻을 기리고 있다.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오전 방앗간 일이 끝나고 모두 경로당 안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특식으로 짜장면을 준비했다. 점심 준비하는 주방에선 부녀회원들의 깔깔 웃음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누구 엄마는 혼자 계신 아버님 드리겠다며 짜장을 덜어 얼른 집에 다녀온다. 남자들은 큰방에서, 여자들은 작은방에서 맛있게 식사한다. 잠깐의 휴식 시간을 마치고 다시 일어선다. 방앗간에서 떡쌀 몇 자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 또 일하러 가볼까요?"

담골 장동리는 장수마을이면서 청년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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