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씨만큼 뜨거운, 정당의 이유 있는 유세가 한반도를 달구었다.
 그러나 백성의 관심이 사뭇 비켜난 가운데 지난 주말 결전의 보궐 선거가 있었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나는 채만식 선생님의단편 소설 ‘논 이야기’를 생각한다.
 소설에서 한덕문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일인들이 죄다 내놓구 가는 것을, 백성들더러 돈을 내구 사라구 했다면서?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아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고마운 노릇을 해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 마음을 붙이고 살지. 독립이 됐다면서 고작 백성이 차지할 땅 뺏어서 팔아먹는 게 나라 명색야? 독립됐다구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
 노인에게 있어, 일인이 나라를 차지했거나 독립이 되었거나 그의 하루가 고달픈 것은 마찬가지라 여긴 탓에 노인이 울컥 내뱉는 말이다. 다소 엉뚱한 발상이긴 하지만, 소박하고 거짓 없는 진심임이 분명한 한덕문 노인의 이 말을 떠 올려 보는 것은, 지금 우리의 심정이 노인의 생각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에 비친 나라가, 해방전이나 해방 후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믿는 노인의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막연히 알고 있는 나라의 살림살이에 구체적인 무엇을 바라고 요구하겠는가? 그저 편안하고 배부르게 살면 그 뿐이지 라는 단순한 생각을 어느 누구인들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어느 당이 정권의 핵심에 있거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백성은 믿는 것이다.
 우스개 소리 같지만 단순한 백성은 ‘쌀 밥 먹게 해준 박정희 정권’을 말하고 ‘깡패가 없었던 전두환 정권’을 말한다.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겠지만,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이 사람들 농담이 되었는가? 왜 진실처럼 이 말을 믿게되는가?
 소설 속 한덕문 노인처럼 백성은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안정된 나라가 건재하길 바라고 있으며, 너나 없이 잘 돈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살림살이를 바랄 뿐이다.
 나의 말에, 몇몇의 뜻 있는 사람들은 어이없다고 혀를 차겠지만 나는 이것이 인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명분이 그럴 듯 해도, 백성의 하루가 고단하다면 나라의 명분은 백성의 마음속에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물론 나라가 있으니 백성이 있는 것이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치가 있으니 백성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하루하루 달라지는 세태의 변화를 왜 백성들이 모르겠는가?
 분명히 더 나아진 사회와, 더 나아진 살림살이를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실망이 큰 탓에 볼멘소리를 해 보는 것이다. 지난 봄 탄핵으로 전국이 얼어붙었을 때 진지했던 백성의 소리를 생각해본다. 그때의 바램을 다시 기억해본다.
 “당신을 지지하는 것은 당신이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 시인 송 복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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