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간지럽고 싶다, 한없이/김광일

“존귀한 당신을 나는 독자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독자보다 더 선험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내는 이유다”
 열림원에서 최근 출간된 ‘간지럽고 싶다, 한없이’는 김광일 조선일보 문학담당 기자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개인적인 체험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문학담당 기자에게 문학은 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당면한 주제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과 삶 전반에서 대면하는 순간순간의 감동과 떨림을 저자는 ‘간지러움’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했다.
 그 간지러움을 더 많이 느끼고 싶다는 열망과 자신을 간지럽힌 작가와 작품을 독자들과 함께하고 싶고, 또 자신의 글이 독자를 간지럽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두 이 책을 쓰게 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문학담당 기자만큼 불행한 처지도 없다.
 문학담당 기자가 만나는 사람은 시인 아니면 소설가 아니면 문학평론가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글이라면 둘째 자리가 서러운 사람들이다. 문학담당 기자는 그들을 취재하고 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쓴 작품이나 책을 읽고 리뷰를 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것을 비운이라고 말한다.
 문학담당 기자는 아무리 잘 써도 취재원을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써도 평생을 감동적인 글을 쓰는 것으로 업을 삼은 전문 문필가들이 볼 때 기자들이 쓴 글은 항상 어쭙잖아 보일 수 있다. 문학담당 기자들이 어떤 작품에 대해 리뷰 기사, 혹은 인터뷰 기사를 내보낸 후 그 문인으로부터 받게 되는 인사말 중 절반 이상이 “사진 참 좋습디다”다.
 이러한 비운을 숙명으로 알고 문학담당 기자는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오는 신간을 가려 읽고, 작가를 인터뷰하고, 전체 문학판을 읽고, 시의적절한 기획기사를 발굴해야 한다.
 글쓰기에 ‘도가 튼’ 문인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 건 비운이지만, 문학담당 기자는 이제 막 신춘문예의 관문을 통과한 신출내기하고도 마주 앉고, 구십을 넘긴 원로 작가와도 마주 앉아서 자세를 삐딱하게 가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 아닙니까?”라는 ‘무지막지하게 무식한 질문법’으로 무장해도 통할 수 있다.
 게다가 문학담당 기자의 글은 근본적으로 독자를 향해 있기 때문에, 결국은 기자가 발벗고 취재하고 자신을 내던지는 것은 오로지 독자와 공감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책을 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이다. 그렇다면 문학담당 기자에게는 무엇이 현장일까? 작가와의 인터뷰, 문학 세미나나 문학 기행 등이 우선 떠올릴 수 있는 현장이고, 책 그 자체가 현장일 수 있다.
 여기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고, 다시 혹시 독자에게 현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책으로 인쇄된 작품을 가장 먼저 읽는 독자는 누구인가. 언론사의 문학담당 기자가 아닌가. 최종적으로 문학담당 기자에게 현장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일찍이 누구도 얘기한 적이 없는 문학담당 기자의 ‘현장’에 대해 끈질기게 접근해가는 모습에서 집요할 만큼 투철한 기자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아, 내가 문학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내가 평론가나 소설가였다면, 아니 하늘이 도와 평론가 겸 소설가 겸 시인이었다면 나는 몇 차례의 독서를 끝으로 타인의 소설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소설에 대한 어떠한 비밀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오직 나와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들려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본문 중)
 저자는 문학의 비밀에 다가가고 문학을 영원히 사랑하는 길은 오히려 영원한 아마추어로 남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이 문학과 뒤섞이는 순간
 저자는 문학을 음미하면서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라 그에 꼭 맞는 문학작품과 함께 문인들의 에피소드와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학을 꼽는다면 ‘아버지의 문학’이다. 어렸을 적 누나가 동생들 공부시키겠다고 무단가출을 감행했을 때, 누나를 찾아내 집으로 데려와 아랫목에 앉혀 놓고 “네 이년,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거라”라고 꾸짖던 아버지. 집 나간 딸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데려왔다고 안도한 후에 속마음을 감추며 큰소리치시는 저 반어법의 무게에서 저자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문학을 보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밖에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에 대한 논쟁, 문학작품에 순위를 매기는 행위, 예술작품에서 표절의 문제, 한국의 이미지가 문화 예술의 세계진출에 미칠 영향, 창작의 모티프로서 ‘복수’가 가지는 의미, 정신이 아닌 몸의 아름다움 등 최근의 문화적 관심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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