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수안보를 찾는다.
온천수가 있어 좋고, 또 도안~괴산~수안보를 잇는 길에서는 계절의 흐름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어 좋다.
지금 그 길 옆으로는 여름의 입맛을 석권한 ‘대학 옥수수’가 열병식을 치르는 군인처럼 나란히 도열, 외지 손님을 영접하고 있다.
이렇게 도착한 수안보는 시각적으로 무엇인가를 탁! 하고 던져준다. 바로 산꼭대기에 위치한 정자(停子)이다. 건물 외벽에 조명선까지 설치해 놓아, 밤이 되면 그 ‘바디라인’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산꼭대기와 정자, 과연 이는 어울리는 풍경일까. 정자에 대한 선조들의 문화재적 개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선조들은 누각이나 정자를 세울 때 근처에 물이 흐르지 않으면 반드시 인공적인 연못을 조성했다.
그리고 그 연못도 둘레는 반드시 사각형의 모양으로 했고, 또 연못 안에는 원(圓) 형태의 작은 인공섬을 조성했다.
사각형과 원, 이것은 또 어떤 문화코드를 담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조선 선조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했던 주역사상이 농익게 담겨져 있다.
바로 선조들은 ‘땅은 각(角)지고, 하늘은 둥글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각형 연못이고 인공섬은 원 모양을 했다.
선조들의 이같은 사상은 비단 자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몸에도 이를 적용했다.
지금도 주역은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발(足)은 땅을 닮았기 때문에 각져 있고, 머리는 하늘을 닮았기 때문에 둥글다”라고 말하고 있다.
주역사상은 한걸은 더 나아가 의복에도 이를 적용시켰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갓을 쓴 것은 양기(陽氣)인 하늘 기운을 받기 위함이고, 여성들이 치마를 입은 것은 땅기운 즉 음기(陰氣)를 더 많이 받기위함이었다.
이렇듯 선조들은 자연합일, 즉 ‘나’와 ‘하늘’ 그리고 ‘땅’을 조화시키기 생활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선조들의 이같은 의식세계를 조금이라도 감안했더라면 정자를 산꼭대기에 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연합일이나 순응이 아닌, 자연의 기를 편식적으로 취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풍경은 청주 근교의 문의면 양성산 정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도 산꼭대기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물론 쉼터 기능이 들어 있는 시설물지만 정자의 근본개념을 한참 벗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전국 지자체는 정자까지도 관광 세일즈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송강 정철의 유적지가 많은 전남 담양은 이를 특화사업으로 전개, ‘정자고을’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양반고을도 불렸던 충북도 다른 지자체에 비해 정자가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시급히 상품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산꼭대기에 정자를 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산꼭대기에는 물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하늘’ 그리고 ‘땅’의 자연합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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