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을 보면 ‘백성 民’(민) 자는 노예의 눈을 날카로운 꼬챙이로 찌르고 있는 모습이다. 청동기시대에는 전쟁포로를 일부러 눈멀게 했다. 그래야 도망할 기회를 없애고 하루종일 일을 시키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자 ‘백성 民’ 자에는 그런 슬픈 사연이 담겨져 있다.
 서론이 다소 길렀다. 한자 ‘民’ 자하면 비슷하게 연상되는 단어가 ‘민초’(民草)이다. 이는 백성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풀에 비유한 글자다. 요절한 시인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에서 민초의 이미지를 보다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이쯤되면 오늘문제 민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글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리고 국어사전 어디를 뒤져봐도 ‘민초’라는 단어를 만날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민초는 우리나라 한자가 아닌 없는 일본식 한자다. 일본에서는 민초를 ‘타미쿠사’(たみくさ)라고 발음하고, 글자는 ‘民草’로 적고 있다. 따라서 민초는 역사가 길지 않는 글자이다.
 민초라는 글자를 소설 문장에 처음 사용한 사람은 작가 박종화였다. 그의 작품 ‘금삼의 피’에는 ‘이름없는 민초들 / 엎드려 바라옵기는 왕은이 넓고 넓어 하늘아래 구석구석 민초에게도 융숭하옵시거니와…’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러던 것이 이른바 유신시대를 거치며 독재권력에 대한 民의 저항의지로 민초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순우리말이 없다보니 지금은 거의 우리말이 되다시피 했다.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여러 식물중 민초의 이미지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은 ‘질경이’다. 질경이는 마차바퀴에 눌려도 금방 되살아 난다. 따라서 질경이의 한자 이름도 ‘차과로초’(車過路草) 혹은 ‘차전자’(車前子)이다. 수레바퀴에 짓눌려도 잘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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