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김용택시인의 풍경일기 가을 葉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창문은 이 세상에 남을 것이다. 한 때 내 삶의 순간을 잡아 비춰주었던 정말 별 볼일 없이 평범한, 창문, 그러나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창문, 그 창문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삶의 순간들이…. 인생은 지나간다”
 
 최근 김용택 시인이 낸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김용택 글ㆍ주명덕 사진ㆍ늘푸른 소나무ㆍ8천원) 중 ‘가을-엽(葉)’은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꽃처럼 붉은 감, 빨갛게 단풍 물이 든 붉나무, 조용하게 노란 물이 들어가는 팽나무, 벌써 잎이 다 져 가는 산벚나무, 보라색 꽃 등을 달던 칡넝쿨 등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읽을 수 있다.
 김시인은 섬진강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곳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그곳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르쳤던 제자들의 아이들을 또 가르치며 지금도 섬진강가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 행복을 주고 삶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시인은 틈틈이 각종 신문과 교양지 등 작은 지면들을 빌어 얘기해 왔다.
 그래서 다소 분산되어 있었던 섬진강과 아이들의 풍경을 모아 계절별로 정돈한 것이 ‘김용택의 풍경일기’ 시리즈이다.
 ‘가을-엽’에서는 ‘사람은 무엇으로 자라는가’라는 작은 주제를 달고, 가을을 나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이야기, 풀과 나무,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들, 산과 새들의 이야기들을 동화처럼 고운 서정의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아, 이 가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꽃 피우지 않은 풀과 나무들은 모두 꽃을 피운다. 강변 저기 저기에도 수많은 풀들이 꽃을 다 피운다. 여기를 보면 여기에 쑥부쟁이 꽃이 피어 있고, 저기를 보면 저기 저 논두렁에 하얀 구절초꽃이 피어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이런 자연의 질서 앞에 시인은 경건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미안하다고 말한다.
 시인은 아름다운 산천들이 병들어가는 것이 모두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맑고 고운 가을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는 시인은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들이 이 스산한 겨울의 문턱을 넘으며 무엇을 감사하고 자기의 복됨을 느낀단 말인가. 이 쓸쓸한 계절의 모퉁이에서 우리들은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늦가을 단풍 물든 은행나무를 보고 행복했다는 정치인이 한 분도 없음에 나는 허전하다”
 김시인이 가을 은행나무 앞에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매우 인상깊다.
 “사람들아! 된서리 친 초겨울 은행나무 밑을 지날 때 두 눈을 부릅뜨지 말고, 큰소리로 말하지도 말라. 은행잎은 바람 한 점 없이도 땅으로 가만히 내릴 줄 안다”
 이 책은 김시인의 눈을 통해 읽는 가을풍경 외에 사진작가 주명덕씨의 서정적인 사진도 볼 만하다. (자료제공: 순천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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