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진회’란 이름의 학교폭력실태의 공개는 가히 충격적이다. 한 현직교사가 발표한 학교폭력실태는 단순히 ‘학교 내 불량서클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 아니냐’는 안일한 인식태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다. 어린 초등학생까지를 끌어들이는 저연령화 현상과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커뮤니티 형성이 쉬워져 다른 학교와의 연계를 통한 조직의 광역화 현상이 기존의 학교폭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름을 일제하의 친일조직과 폭력성 짙은 일본만화에서 따온 것도 문제지만, ‘일진회’의 내부 규율과 교육과정은 단순한 학내 서클이 아닌 조직폭력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속칭 ‘일진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탈행위는 학생을 폭행하는 일을 ‘왕따 놀이’, ‘때리기 놀이’ 등 ‘놀이’로 표현하며 즐기는 문화에서부터 단체 모임을 통해 공개 성행위 등 온갖 일탈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증언도 나오고 있다.

어느 사회나 일탈그룹이 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학교폭력은 청소년의 인격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사회적 문제로 나라의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기에 기성세대의 표피적인 문화를 별 어려움이 받아들이는 면도 있지만, 필자는 교육제도와 변화되지 않는 사회의식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인간성과 개성을 실질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취득하거나 주어진 형식에 따라 한 인간을 평가하는 행태가 만연된 사회에서는 한번 결정된 간판이 평생을 따라 다니며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소년기에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으면서도 좋은 학군을 찾아 헤매고, 학교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과외, 학원교육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환경을 가진 이들에게는 좌절과 위화감을 조성하게 되고, 하기 싫은 공부보다 다른 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억지로 그 대열에 합류하도록 강요하는 교육환경은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꿈을 상실시키고 학교 밖을 맴돌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 더 많은 과실(果實)이 부여되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과실의 차가 너무 커서 중세에서와 같은 신분적 지위를 고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기득권을 가진 자는 그 기득권을 대물림하려하고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자는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신분상승(?)의 욕구를 자기자식에게 기대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에게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각자의 인간성과 개성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행복하고 자긍심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한 홍익인간이니, 창의성 있는 교육이니, 인성교육이니 하는 교육목표와 제도개선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당국의 학교폭력 와해작전은 실태파악, 가입차단, 조직와해의 3단계로 나뉘어 진행할 계획이고, 학교경찰(스쿨 캅)제도의 도입도 추진 중이다. 학교폭력문제는 학교위신 등을 이유로 쉬쉬하는 은폐주의나 단순한 ‘문제아’처리수준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으며, 적극적인 공론화와 국가, 지역사회, 학교, 가정이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해학생들에게도 처벌위주의 대책보다는 끊임없는 관심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공적 채널이 갖추어져야 하며, 피해학생들의 보호책도 반드시 강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근원적인 근절대책은 사회의식의 개혁을 동반한 교육제도의 개혁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여! 너무나도 창창한 10대에 자신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거나, 동료학생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충북대 법대 교수 김 수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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