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발굴 뒷얘기-64.중부고속도로조사(3)

필자는 박물관의 한 연구원이 전체 발굴계약시 감했던 내정가 이외의 잔여분을 돌려쓰는 방법을 제시하기에, 다시 한번 도로공사를 찾아가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잔여분 500만원을 쓰는 것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대하여 박물관의 한 연구원이 전체 발굴비 계약 시 감했던 내정가 이외의 잔여분을 돌려쓰는 방법을 제시하기에, 필자는 다시 한 번 도로공사를 찾아가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잔여분 500만원을 쓰는 것으로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에 음성 출신의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병호 연구관을 초지하여 현장 문제를 협의하고, 그의 지시를 받는 업체와 계약을 맺는 선으로 진행하여 내곡동ㆍ향정동 집터를 수지작업으로 떠내어 작업을 마쳤다.
조사단 본부는 발굴 작업의 종료와 함께 종합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발굴유적들의 주요 장면을 컬러 사진으로 소개하도록 하여 성실한 연구 결과물이 되도록 독려한 긑에 『中部高速道路 文化遺積 發掘 綜合報告書』(1997. 12. 4×6배판, 693쪽)를 학계에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는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종합보고서이며 고속도로의 건설과정과 고고학 조사와의 관계를 설립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후로 도로공사에도 이를 이해하여 건설계획에 앞서 우리 박물관에 의뢰하게까지 되었다. 그로해서 판교~구리ㆍ신갈~반월 간 고속도로 조사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맡게 되어 반월(지금의 안산)에 있는 한양대학교 모교수와는 한 때 불편한 관계에 있기도 하였으나, 임효재 교수의 원칙을 지키는 거중조정으로 맡기로 한 예도 있었다.

그 뒤로 제 2경인고속도로ㆍ서울시 순환고속도로ㆍ영동고속도로 확장공사ㆍ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양재~천안) 등 도로공사의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많은 부분을 도맡아 하여 경인지역의 많은 대학 박물관으로부터 질시를 받기도 하였다(이러한 공로로 도로공사로부터 2회에 걸쳐 공로패를 받았다).

한편, 중부고속도로 발굴에서 얻은 많은 유물과 두 집터의 수지작업물, 고인돌과 석불 등에 대한 보존 관리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우리 조사단이 더 이상 도로공사를 설득시킬 명분과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여 못내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필자의 앞집에 살고 있는 신문섭(충북대 근무ㆍ당시 김현수 국회의원 비서관)이 찾아 왔기에 그러한 고민을 이야기하였더니, 마침 건설분과 소속이었던 김현수 의원이 직접 유물과 관계되는 자료를 본 끝에 이들 자료를 엮어 국정질문에 하기로 하였다.

1987년 9월경, 도로공사 황본부장(이때는 승진하였다)으로부터 중부고속도로에 대한 김현수 의원의 질문에 따라 전시관을 짓기로 하였다는 낭보가 왔다. 이어 바로 김의원으로보터 같은 연락이 와 조사단을 기쁘게 하였지만, 고속도로의 준공이 12월 7일로 결정됨에 따라 긴급회의를 하여 전시계획과 방법을 의논하여야만했다.

그래서 야외에는 궁평리ㆍ양덕리 고인돌과 청주 내곡동 석불을 전시하기로 하고, 전시관 안에는 내곡동 ㆍ향정동 2개의 집터와 특히 내곡동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들을 보수하여 전시하기로 하였다. 또한 번천리 가마터를 축소 복원하고, 허난설헌의 부군인 이조판서 김 위묘 출토 복식자료와 함께 북일면 비행장의 순천 김씨묘 출토 천릭(天翼)과 함께 네델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루펜스가 그린 「한국에서 온 청년」사진을 전시하기로 하였다(이 사진은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이었던 최성자선생이 수고하였기에 이에 감사한다).

약 한달 간의 철야작업으로 준공기일에 맞춰 개관하였으나, 당시 대통령이 직접 함가하여 준공식을 갖는다 하여 우리 박물관 관계자들은 매번 출입 시마다 심한 자괴감을 느낄 정도의 검문과 검색을 받았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중부고속도로 조사는 이로써 1년 6개월로 매듭짓고, 이 전시관에는 필자의 제자인 길경택선생(형 충주박물관 실장)을 추천하여 근무토록 하였으나, 도로공사의 운영방침과 음성군ㆍ충청북도와의 계획이 맞지 않아, 지금은 처음 전시와 많이 변형되어 중부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 전시관 계획과 관련하여 김원용교수는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으며, 실제로 이러한 아이디어를 통해 서울대에서 발굴한 몽촌토성의 발굴결과를 갖고 서울시와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여 성사시킨 것도 우리 고고학계의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음을 밝혀둔다.
/충북대학교 박물관장 이융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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